인생은 알 수가 없다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시.
듣도 보도 못한 이 낯선 곳에서 남편은 6개월간 본사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단다. 8월 초에 그가 먼저 떠나고, 며칠 뒤에 우리도 건너왔다.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9월 초까지로 길어서 방학을 아빠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예정에 없던 우리의 일본살이 일상을 기록해 본다.
이곳에 도착한 지 닷새째이다.
남편이 아침 7시 30분에 조용히 출근한 뒤에도 우리 셋은 9시 넘어서까지 늦잠을 잔다. 잠자리가 편치 않는데도 이상하게 잠이 늘었다. 눈을 뜨면 이부자리를 치우고 매트를 깔고 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여기 다이소에서 산 요가매트는 놀라운 내구성으로 벌써 약간 찢어졌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내 만두카 매트를 가져왔어야 했다ㅜ).
나 혼자라면 초간단했을 아침 식사였겠지만, 방학을 맞은 성장기 어린이들을 위해 나름 정성껏 차린다. 집 앞 마트에서 매일 장을 봐와서 하루이틀 치의 식재료가 작은 냉장고에 차곡차곡이다. 달걀과 베이컨을 굽고 어제 먹고 남은 소고기도 몇 점 구웠다. 담이가 한입 베어 물고는 눈이 커졌던 게살크림고로케도 그릴에 데운다. 흰밥 위에 한국에서 가져온 김자반을 뿌려주면 아이들이 가장 잘 먹는 메뉴 완성이다. 나는 토마토 사과 오이를 씻어서 썰고 코울슬로에 참깨드레싱을 살짝 버무려 고기와 함께 먹는다. 먹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장을 볼 때 소량씩 구매하고 냉장고에 쟁이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코스트코에서 달걀 두 판씩 사던 내가 여기서는 고작 10 알을 산다. 여긴 뭐든 소량씩 판다. 수박 한 통을 1/10 크기로 예쁘게 소분해서 진열해 놓은 걸 보고는 귀엽고 신박해서 웃었다.
아침을 먹고 테이블을 정리한 다음 아이들과 책을 펴고 공부한다. 이 집의 유일한 테이블 하나가 우리의 식탁이자 책상이다. 크기가 아담하여 셋이서 딱 붙어 앉을 수밖에 없다. 의자가 없어서 좌식 생활을 하려니 허리가 아프다. 그래서 스트레칭을 더 자주 한다. 코브라자세(우르드바무카)와 다운독 자세(아도무카스바나)를 반복하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애들은 바닥생활을 해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딱딱한 바닥에 얇은 요 한 장 깔고도 열 시간을 안 깨고 잔다. 나도 어릴 땐 저랬던가? 신기하다.
오늘은 나가서 점심을 사 먹고 집 근처 도서관에 갈 예정이다. 그곳엔 한글책은 없지만 영어책은 있다. 며칠 전에 몇 장 읽다가 두고 온 폴 오스터의 책을 다시 찾아 읽어야지. 휴게실 자판기에서 밀크티와 코코아도 뽑아 마시면서. 날씨가 크게 덥지 않아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