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도 괜찮아

by La Francia

새해 첫날에도 자매는 다퉜다.

둘이서 달무티라는 카드게임을 하던 중 보리가 마음이 상했고(그 연유는 모른다), 게임이 끝난 뒤 담이가 카드를 정리하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담이는 작은 숫자부터 큰 숫자 순서로 카드를 배열하고 있었는데, 보리는 자기 방식대로 정리하겠다며 카드를 빼앗았다.

-아, 왜 뺏어가 언니?!

-그거 니 거 아니잖아. 산타가 선물 준 거잖아!

-내가 먼저 정리하고 있었잖아!

-나도 정리하고 싶으니까! 내가 더 잘하거든?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중재에 나섰다.


-그만—


사실 나는 아이들의 싸움을 참을성 있게 지켜보지도, 현명하게 다루지도 못한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이성을 잃는 가장 많은 순간은, 얘네들이 싸울 때다.

애써 날숨을 길게 한 번 내쉰다. 화내지 않기 위해서. 아마 아이들 눈엔 긴 한숨처럼 보였을 것이다.

-자,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왜 그러는 거지?


새해, 한국 나이로 열 살과 열한 살이 된 연년생 자매.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리다가 기다렸다는 듯 앞다퉈 고자질을 시작한다.

-언니가 내가 정리하고 있는데 카드 뺏아갔어요!

-쟤가 게임에서 반칙 써서 이겨놓고 카드도 다 가져가잖아요!


게임 중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카드는 먼저 정리하던 사람이 마저 하거나, 반씩 나눠 각자 방식대로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머리로는 그런 접근이 가능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싸울 거면 하지 마, 게임. 산타가 그거 너희한테 준 거 후회하겠다. 어쩜 그렇게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니? 카드 정리를 누가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오늘 새해 첫날이야. 1월 1일부터 그렇게 싸우고 싶어? 새해엔 안 싸우겠다고 하지 않았어? 엄마는 너희 싸울 때 제일 속상하다고!!



말의 데시벨은 뒤로 갈수록 높아졌다. 결국 나는 또 화를 내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저 상황을 글로 옮기는 지금. 수치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내가 아이들이었어도 황당했을 것 같다.



그날 저녁, 일기 쓰는 시간.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 새해 소망을 말해보기로 했다.


보리가 말했다.

-나는 담이랑 안 싸우고 싶어. 엄마가 속상해하니까.


보리, 나의 보리, 내 첫딸. 얘는 이런 애다. 늘 엄마를 살피고 눈치를 본다. 딸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준다는 고마움과, 자칫하면 내가 이 아이를 가스라이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엄마가 속상해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 건 옳지 않으니까.


담이가 이어 말했다.

-나는 우리가 싸워도 엄마가 화를 안 냈으면 좋겠어. 안 싸우긴 힘들 것 같거든.


담이, 내 둘째. 투명하고 심지 곧은 아이. 얘는 늘 이런 식이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한다. 그래서 밉고, 기특하다. 남의 기분을 맞추는 것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 아이는 안다.


자매는 천성이 다르다.

태어난 순서와 부모의 양육 태도를 고려하더라도, 둘은 너무 다르다. 보리는 늘 주위를 살피고 누군가보다 잘하고 싶어 한다. “친구들이 다 학원 다니더라고요. 나도 학원에 가서 좀 배우고 싶어요.” 이런 말은 언제나 첫째의 입에서 나온다.


둘째에게 언니 이야기를 하며 물었다.

“담이도 학원 다닐래?”

그랬더니 자신은 그림 그리고 춤추는 걸 좋아하니까, 그걸 하겠다고 했다.


“그럼 미술학원에 가서 제대로 배우고, 그림대회 같은 데도 나가볼래?”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걸 맘껏 그리고 싶어. 집에서.”


내 얼굴이 굳었는지, 담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안 돼요?”


아이들이 자라며 겪게 될 일들과, 타고난 기질이 삶이라는 과정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런 걸 궁금해하기 전에, 나는 역시 마음을 더 다스려야 한다. 갈등이라는 상황에 취약한 나를 인정하자. 이제는 더 이상 어리기만 한 나이가 아닌 딸들에게, 나의 약한 부분을 선선히 보여줘야겠다. 엄마도 약점 투성이의 인간일 뿐이라는 걸 자매가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직은 조금 이른 바람일까. 안 싸우는 법을 가르칠 순 없겠지만 사람은 틀릴 수 있고 화낼 수 있고 그럼에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