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쓰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by La Francia


딱히 특별한 소재가 생긴 것도 아닌데 그저 뭔가가 너무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쉽게도 그럴 땐 바로 쓰는 일에 돌입하기 힘든 상황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노트북 화면을 열었는데 하얀 화면 속 깜빡거리는 커서에 이유 없이 압도당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말이다. (지금은 후자의 상황으로 한동안 멍하니 하얀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제 막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쓰는 일은 여러 모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다짐했다. 매일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한다는 건 그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밴다는 것이고, 익숙해져서 차츰 잘하게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꾸준함의 힘을 믿는 편이다.


그렇다. 나는 쓰기를 좋아하고, 더 잘하고 싶다. 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대표적으로 아웃풋을 발생시키는 행위이고, 산을 통해 내 안의 무언가가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는 걸 느낀다. 마음 맞는 편안한 상대방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지금처럼 무언가를 쓰는 이유이다. 신체가 음식을 먹고 소화 흡수한 후 잘 내보내야 하듯, 정서적으로도 읽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잘 내보내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웃풋의 방식으로 말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니면 노래, 춤, 그림, 악기 연주 등의 예술 활동 혹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양한 창의적 행위들도 있겠다.) 우리들 대부분은 대화 혹은 수다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와 고충을 나누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가?’ 하고 질문해 보면 흐음.. 하게 된다. 나의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글쓰기를 해보려고 하면 대놓고 반가워하지 않는 반응이 돌아온다. 쓰기를 과제로(강제로) 자주 경험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개인적으로 일기 쓰기 등의 자발적 쓰기 활동을 하는 학생은 극소수이다 (조사 표본이 남자 고등학생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자의적으로 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글을 쓰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 달 전쯤 직접 찾아가 들은 강원국 작가님의 글쓰기 강연에서 '왜 쓰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성찰하고, 치유받고, 존재를 증명하고, 또 다짐한다. 다짐한 내용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애쓰는데, 이것은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는 뇌의 노력이고 마치 최면과 같은 효과가 있다.


박연준 시인은 <쓰는 기분>에서 쓰는 일은 '성급하고 불완전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내 속에서 걸어 나와 흰 종이에 도착하는 과정을 돌보는 일'이라고 했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삶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라고 쓴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글쓰기 행위 자체가 주는 위안이 있다. 쓰다 보면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생각과 감정이 차곡차곡 정리된다. 내가 쓴 글을 나중에 보면 그 속에 내가 보인다. ‘잘 사는 일은 자기 자신과 더 친해지는 일’이라고 어떤 소설 속 인물이 말했다.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더 친해질 터이므로, 결국 나에게 글쓰기는 내 삶을 더 잘 사는 일이다. 나의 사유를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를 통해 나를 더 알아가는 것.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아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의 삶과 능동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자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적극적인 태도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는 방식에 정도正道는 없겠지만, 삶의 태도는 스스로가 느끼는 삶의 만족도와도 직결된다.


다음 학기 수업에서는 채점하지 않는 글쓰기 활동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쓰기를 통해 스스로와 더 친해지는 경험을 조심스레 공유하고 싶다. 학생들은 반기지 않을 것 같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