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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rancia Jan 09. 2022

오늘 밤도 이렇게 간다

육아일기

  아이들이 등장하는 외국 영화나 미드 같은 걸 볼 때마다 심각하게 비현실적인 장면을 마주한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과 외따로 각자의 방에서 잠드는 것이다. 그것도 "굿나잇 맘, 굿나잇 허니"와 같은 대사를 나누며, 믿을 수 없이 평화롭게.

  나의 아이들은 이제 6세, 7세가 되었고 여전히 엄마와 같이(정확히는 엄마의 팔을 베고) 잠자기를 매일 밤 간절히 원한다. 이미 3년 전쯤 자매의 침실을 마련해서 슬라이딩 이층 침대를 예쁘게 세팅해주었지만, 그곳은 낮에 놀이할 때만 이용할 뿐 잠잘 때는 거부한다. 왜? 엄마가 옆에 없으니까.

  매일 밤 9시. 나는 진지하고 엄격한 태도로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잖아. 어린이는 각자 침대에서 자는 거야."라며 자매 방으로 이끈다. 그러면 둘은 세상 슬픈 얼굴로 훌쩍 거리며 "그럼 문 앞에서 잠들 때까지 있어. 가지 말고 지켜봐 줘, 엄마"하고 애원한다. 그리곤 한참을 뒤척거리며 쉬이 잠들지 못한다. 잠들기에 성공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대략 열에 여덟 번은 새벽 4시쯤 "무서운 꿈 꿨어"하며 울먹이며(둘째는 대성통곡하며) 안방으로 들이닥치니까. 반쯤 잠에서 깨서 우는 애들을 다시 돌려보내지 못하고 결국 한 침대에서 서로의 신체를 맞대고 잔다.

  가끔은 너무 고단해서 따로 재우기 위한 그 지난한 과정(설득, 회유, 잠들 때까지 지켜보기)을 집어치우고 그냥 안방에서 다 같이 잔다. 거기에도 방식이 있다. 엄마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 자매가 엄마의 양팔을 베고 눕는다.  왼쪽은 첫째인데 항상 엄마를 등진 채 모로 누워 자기 몸의 뒷면을 밀착시킨다. 둘째는 오른쪽에서 엄마 쪽을 향해 누워서 겨드랑이 사이로 쏙 들어올 듯 깊숙이 파고든다. 이 자세가 완성되면 거의 1분 안에 둘의 숨소리는 깊어지고 잠에 빠져든다.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경이롭다.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은 어른들의 말은 한 치 오차도 없다. 이 작은 존재들은 천진하고 무방비한 자세로 잠든 채 부지런히 체세포를 불린다. 볼을 만져도 머리칼을 쓰다듬어도 팔다리를 주물러도 웬만해선 깨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업어가도 모른다. 자세도 수십 번 이상 바꾼다. 심지어 갑자기 일어나 앉아서 눈을 반쯤 뜨고 끔뻑거리다가 반대방향으로 풀썩 쓰러져 계속 잠을 이어간다.

  쌕쌕 거리는 숨에 맞춰 차올랐다가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올챙이 같은 배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잠든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이마부터 코끝까지 훑어본다. 속눈썹이 가지런하고 코는 정말이지 너무 작고 두 콧구멍은 믿을 수 없게 앙증맞다. 콜라겐이 가득한 양 볼은 놀랍게 탄력적이며 그 사이에 톡 튀어나온 두 입술은 늘 약간 벌어져있다. 꿈에서 뭘 먹는지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입맛을 다시기도 하고, 화난표정이 되어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몇 년 전 내 몸에서 나온 이 조그만 몸들을 몇 시간 전 욕조에서 내 손으로 구석구석 씻겨주었다. 비누냄새가 나는 정수리에 습관처럼 코를 대본다. 그 익숙하고도 달큼한 냄새에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진다. 발가락부터 손가락까지 하나씩 다 쓰다듬으면서 나도 잠을 청한다. 어쩌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에서 자게 되는 날이 오면 내가 제일 서운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살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나저나 외국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독립적으로 잘 수 있는 건지. 내 주위의 아이 엄마들과 아무리 얘기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불가해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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