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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28. 2020

인도 신문, 그것도 1면에 내가?!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12)


콜카타, 하오라 기차역.

인도 중부 도시, 라이푸르행 기차 시간과 플랫폼 번호를 확인했다. 잘 알려지지도 않고 그럴듯한 볼거리도 없는 라이푸르 지역을 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긴긴 연착의 기다림 끝에, 열차에 올라타자마자 3층 침대칸으로 쏙 들어가 누웠다. 포근하다 못해 안락했다. 혹자는 '안락함'이라는 단어를 어머니의 자궁, 캥거루 주머니, 욕실 속 욕조 등으로 빗대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이 인도 기차의 침대칸만큼이나 안락함을 잘 대변해주는 게 있을까 싶다. 제시간에 플랫폼으로 들어오지 않는 기차를 비웃으며 어두워져 가는 저녁과 괜히 서성거리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내는 데에는 이 만한 곳이 없다.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곧 있으면 만날 ‘인디아 CSR’의 ‘루센’ 아저씨를 잠시 떠올렸다. 인도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을 다루는 온라인 매체로, 서울에서부터 메일을 보내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설립자 '루센' 아저씨 역시 흔쾌히 방문을 허락해주셨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밤 12시가 넘어 시골 도시, 라이가르에 도착했다.
“하섭 군 맞나요? 오느라 고생했죠? 루센 K라고 해요.”
"우와! 맞아요. 이렇게 나와주시다니 감사드려요!"

콧수염이 인상적인 '루센'아저씨와 그의 사진사 친구분께서 함께 마중 나와 반갑게 맞아주셨다. 기차역을 서둘러 빠져나와 대기 중이었던 차를 타고 '루센' 아저씨가 예약해주신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해보니 이 동네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었다. 게다가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요리사님이 남아 우리에게 식사까지 내어주셨다. 황송할 따름이었다. 연신 “보훗 단야밧(정말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감사함을 표현했더니, 어설픈 내 힌디어가 우스꽝스러웠는지 괜찮다며 계속 웃으셨다. 


아 정말 오랜만에 매트리스가 아닌 푹신한 침대에서 단잠을 잤다. 비록 밤새 바퀴벌레와 동침을 이어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인도에서 바퀴벌레와 익숙해진 시간 동안 그만큼 푹신한 침대가 낯설고 그리웠다. 

아침이 되자 ‘루센’ 아저씨께서 우리를 데리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어디로 가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받은 호의가 너무 커서 막노동이라도 못하겠냐는 심정으로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짜띠스가르주 전역으로 매일 7만 부 발행되는 'IRPAT TIMES' 신문사의 사무실 앞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 우리는 신문사 사장 '나브니트 자가트람카'씨를 만났다. 루센 아저씨의 오랜 친구로, 기업의 CSR 활동에 관심이 많아 신문에도 인도 기업의 CSR 활동을 다루고 계셨다. 마침 우리의 방문 소식을 듣고 꼭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했다. 인도의 사회적 기업들을 탐방하고 다니는 한국인이 신기하다고 연신 지금까지의 여행 이야기를 물으셨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한 가지 질문을 건넸다. 
“사장님은 그런데 왜 CSR에 관심을 가지고 일간지에 이런 기사들을 다루게 되었나요?”
그러자 여러 번 받아본 질문인 마냥 내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답을 들려주셨다. 

“저는 누구나 자신이 받은 건 되돌려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어느 날 풍년이 들었으면, 그건 농부 혼자서 잘나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 밭을 이루고 있는 땅과 기후 등 다양한 영향의 도움을 받은 거지요. 기업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성공한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있잖아요. 저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에 자신들의 몫을 나누는 올바른 기업가들을 알리고 싶었어요. 주민들도 어떤 기업가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하고요. 예를 들어 기업이 장애인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거나, 지역 주민들을 가르치거나, 다리를 만들거나, 건강 교육 등을 도맡아 한다면 주민들은 그 노력을 '알아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긍정적인 사회는 이렇게 '서로'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저는.”
듣고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런데 CSR에 대해 생소해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문득 떠 오른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당연히 이런 기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재미있는 기사들과 함께 풀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흥미로운 기사 외에도 꼭 필요한 기사들도 있어요. 제게는 이런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들이 여기에 속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 당장은 사회공헌에 관한 기사들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기업가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만큼 대중들도 그 노력을 알아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긍정적인 에너지로 서로가 상생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지금처럼 계속 ‘긍정적인 에너지’를 매일 출판하고 싶어요.”
사장님의 확신에 찬 대답은 신념이 담겨 명쾌하면서도 섹시했다. 




1시간이 훌쩍 넘는 신문사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를 옮겨 ‘인디아 CSR’ 사무실로 향했다.

이 회사를 만드신 루센 아저씨, 이 사람 자체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도대체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아저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해주셨다. 

“내 아버지는 농부셨고, 여기서 100km나 떨어진 시골이 내 고향이에요. 도시에 비하면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서 어릴 땐 책조차 구하기 힘들었어요. 깡 시골이었죠. 어릴 땐 책조차 구하기 힘들었어요. 어쨌든 그 덕에 사회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죠. 그런데 인도에는 그런 빈부격차를 해소하려고 노력하거나 그런 문제들을 알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4년 전 문득 누군가는 해야 되겠단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보니까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이 생각 하나만으로 홀홀 단신 노력하고 있는 아저씨가 또다시 새롭게 보였다.
“그런데 아저씨! 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나요?”

어찌 보면 뻔한 질문에 대한 루센 아저씨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기업은 현대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상품을 만들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일자리를 제공하죠. 하섭 씨도 잘 아는 삼성을 예로 들어보죠. 어느 날 삼성이 없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삼성의 제품들을 더 이상 구하지 못할 테고, 노동자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겠죠. 따라서 기업은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고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그 대가로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는 거고요. 그런데 반대로 기업 역시 지역사회와 노동자, 소비자들의 도움 없이는 성장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업 역시 이윤추구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거지요.”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의 말투는 단호하다 못해, 확신에 찼다. 그런 아저씨에게 이상적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럼 아저씨는 어떤 인도의 모습을 꿈꾸시나요?”

그러자 아저씨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답하셨다.
“인도는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할 거예요. 그 성장을 견인하는 데에는 인도의 많은 기업들이 한몫을 담당할 겁니다. 그 기업들 모두 성공적인 CSR 활동을 했으면 해요. 그렇게만 된다면 인도는 성장하고, 인도 사회도 성숙할 테니까요. 저는 그저 그 성장에 일조하는 사람이고 싶네요.”  



그 뒤로도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밤이 늦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아저씨는 다음 날 우리가 가야 할 기차표까지 몰래 선물로 끊어 주셨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바쁘게 돌아다닌 탓에, 피로가 쌓일 법도 했지만 그 보다는 고마운 마음만 쌓인 하루였다.   


침대에 누우니 '조급하게 몸집을 키우려는 욕심보다는 느리지만 단단하게 걷고 싶다'는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서울에서의 나는 항상 큰 성공만을 바라보다 눈 앞의 작은 성공들을 보지 못했다. 하루빨리 멀리 있는 큰 성공을 서둘러 잡고 싶었다. 이제부터라도 나도 루센 아저씨의 보폭에 맞춰, 느리지만 단단하게 걸어 나가야지 다짐했다. 

루센 아저씨 덕분에 인도의 내일이, 나의 내일이 조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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