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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Feb 05. 2020

아즈함 보훗 쿠스헤, 그래서 너는 오늘 행복하니?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13)


바라나시 화장터 바로 옆에는 빈 건물이 하나 있다.

창문도 없이 뻥 뚫린 빈 건물이지만, 노인분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갠지스 강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깔고 누워 죽음을 덤덤히 기다리시고 계셨다.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에는 정말이지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게 현실 세계인 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영화 ‘트루먼쇼’에 나오는 세트장이길 바랐다. 이 건물 옆으로 화장터의 연기가 매일같이 피어오르고, 화장터 바로 앞 갠지스 강에서는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맞아 사람들이 목욕을 한다.

이 기묘한 공간에 서서 누군가는 ‘인생무상’을 느끼고, 누군가는 ‘인생 유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인생이 이렇게 덧없이 왔다 가는 거구나, 참 의미 없다.’ 싶었다가 ‘어차피 누구나 다 이렇게 왔다 가는 거 좀 더 의미 있게 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차츰 바뀌기도 했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이곳을 찾았던 거 같다.

이 건물을 처음 알게 된 건 ‘류시화’ 시인의 책에서였다. 인도를 여행하며 읽은 ‘류시화’ 시인의 책들은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중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이 건물이 스치듯 언급되었다. 글을 읽자마자 책 모퉁이를 접어서 표시해뒀다.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꼭 찾아보고야 말겠다는 요량으로.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이 건물이었다.

그날도 건물 옥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이었는데, 책 내용 중에서 ‘아즈 함 보훗 쿠스헤(오늘 난 매우 행복하다)’라는 인도어 문장이 소개된 이야기를 읽었다.

책에는 ‘선제이’라는 인도 꼬마가 등장했다. 류 시인이 바라나시에서 자주 찾은 ‘짜이집(인도식 밀크티)’ 아들 녀석이었는데, 류시화 시인을 만날 때마다 ‘Are you happy?’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류시화 시인이 입에 달고 살았던 인도어가 바로 ‘아즈 함 보훗 쿠스헤’라고 했다. 그 날 오후부터 나도 인도어 한 문장 익혀놓을 심산으로 '아즈 함 보훗 쿠스헤'를 입버릇처럼 외고 다녔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고, 아침 일찍 미리 예약해 둔 배를 타고 '아르띠뿌자(일종의 인도 기도 의식)'를 보기 위해 강가로 향했다.





어둑해진 갠지스 강을 마주하고 펼쳐지는 아르띠뿌자는 요란하면서도 화려했다. 의미를 잘 알 수 없는 몸짓과 외침이 난무했지만, 그 나름의 절차와 질서가 공존했다. 보트 위에 앉아 땅 위에서 벌어지는 아르띠뿌자를 보는 건 마치 객석에 앉아 비현실적인 영화나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아르띠뿌자가 끝나갈 무렵, 보트 주인이 내게 물었다.

“어때요? 환상적이지 않나요?”

분명 인도 사람인데 난데없이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게 보트 주인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놀라셨나요? 사실 저 동국대학교에서 10개월간 공부를 하고 왔어요!”

그러면서 '선재'라는 한국어 이름도 있다고 자랑했다. 

'선재'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해서 혹시나 싶었다. 인도 이름을 물었더니, 그는 '선제이'라고 답했다. 

믿기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그 류시화 시인의 책에 나온 ‘선제이’였다. 

"말도 안 돼! 오늘 아침에 류시화 시인님의 책에서 당신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러자 보트 주인 선제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짜이 집 가게 선제이가, 이렇게 커서 보트도 가지고, 짜이 가게도, 카페도 가지고 있답니다.”

 유학 당시 한국에서도 류시화 시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정말 신기하면서도 참 좁구나 싶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아르띠뿌자가 화려하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보트 주인 선제이가 내가  보던 연극의 주연 배우였고 그 배우와 꿈같은 만남에만 온 정신이 팔렸다. 




보트 투어가 끝이 나고 ‘선제이’의 카페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한국에 10개월 있던 것 치고는 한국어를 너무 잘했다. 

“아, 한국어요? 사실 제 첫사랑이 한국 여자였어요. 인도 사람에게 첫사랑의 의미는 굉장히 커요. 모두들 첫사랑과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요. 그래도 2년간 사귀면서 행복했어요. 그때 한국어 공부도 정말 많이 했지요.”
역시 언어와 연애는 기름과 불 같다. 서로가 충족이 될 때 둘 모두 활활 타오르게 되는.. 

아무튼 류시화 시인과의 인연에 대해 차분히 다시 물었더니, 씨익 웃으며 답하셨다.
“어렸을 때 만났어요. 전 가게 일을 매일 도왔는데, 선생님이 우리 짜이 가게에 자주 오셨지요. ‘지구별 여행자’ 책에 나와 있는 짜이 가게가 바로 제가 지금 운영하는 ‘No Problem Tea shop’이에요. 그때부터 류시화 선생님과 계속 만났어요. 제가 선생님한테 행복하냐고 계속 묻곤 했지요. 그게 인연이 되어서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다가 한국에 가서 공부까지 하게 된 거예요. 정말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비행기 값이나 학비를 대주셨어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책에는 실려 있지 않은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나 혼자 읽는 느낌이었다. 상영이 다 끝나고 모두가 나간 영화관에서 나 혼자 쿠키영상을 보고 있다고나 할까. 


“우와 정말 특별한 인연이자 은인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책에도 나온 것처럼 왜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었어요?” 

“간단해요. 아버지가 항상 가르쳐줬지요. 돈보다 손님들이 더 중요한 거라고. 그래서 항상 손님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행복한지 아닌지 물어봐야 한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을 했다는 선제이는 원래 통역사나 대기업에서 일할 계획이었단다. 그러다 고향, 바라나시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도움을 베풀며 살고 싶어 머물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카페를 나오기 전, 내가 농담 삼아 물었다.  

“are you happy, now?”

“하하, 행복하답니다." 

그러면서 몇 마디 더 덧붙였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하루하루 좋은 업을 쌓아가는 걸 의미해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답니다. 앞으로 돈 많이 벌게 되면, 제가 류시화 선생님께 도움받았던 것처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교육받게 돕고 싶어요. 지금도 세 명의 애들한테 컴퓨터와 영어를 무료로 가르쳐주고 있긴 한데 더 큰 도움이 되고 싶죠. 이게 행복 아닐까요? 하하.”

선제이와 헤어지며 속으로 되물었다.
‘나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나?’
앞으로 남은 내 하루하루를 매일 소소하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은 절대평가나 상대평가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아 지금 나 진짜 행복하다'라고 느끼면 되는 거라 생각하니까.


‘아즈 함 보훗 쿠스헤(오늘 난 매우 행복하다)’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에 나온 이 구절을 그렇게 입버릇처럼 줄줄 외고 다녔다. 

그 시절 인도에서 나도 무척 행복했으니까.
SEE YOU,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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