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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12. 2020

세상에는 아직도 지나치게 많은 벽이 있다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4)



"이 책 읽어봤어?"

인도 여행을 준비하던 친구가 책 한 권을 건넸다. 독일 친구 3명이 전 세계의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고 쓴 '33개의 희망을 만나다'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 내용 중에 '홀인더월'에 관한 내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누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고 익히게 될 거라는 예상에서 출발한 한 연구팀은 거리의 담벼락에 컴퓨터 한 대를 설치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컴퓨터 작동법을 터득해 주위 친구들을 가르쳤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결과는 경의로웠다. 그때부터 벽에 구멍을 뚫고 컴퓨터를 설치한 이들이 바로 '홀인더월(Hole In the Wall)'이었다. 당장 내 눈으로 그 막힌 벽에서 희망을 열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다.

인도에 도착해서도 몇 번을 연락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은 뒤에야 드디어 홀인더월 센터 앞에 도착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한국에서 온 학생들인데요. 홀인더월 관계자들을 만나 뵙고 싶어서요. 미리 연락드렸었어요."

"그렇군요. 잠시만 로비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잠시 후, 다소 비장한 표정의 '산토누'와 온화한 미소를 가진 '크라티'가 웃으며 우릴 맞아주었다. 우리는 곧장 컴퓨터가 설치된 인근 학교의 벽을 찾아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홀인더월의 시작을 물었다.

"연구 프로젝트에서 발전해 사회적 기업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대학교 연구 프로젝트 차원에서 시작한 게, 어느새 기업에 돼버렸네요. 아이들 스스로 컴퓨터 학습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시작이었어요."

곰곰이 기억을 되새기는 크라티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실험을 하게 된 거예요? 게다가 이렇게 기업으로까지 만들어 일하는 이유가 뭐예요?"

"벽의 기능이 뭔지 아세요?"

내 질문에 산토누는 도리어 되물었다.


"음, 구역을 나누는 역할을 하지요?"

"맞아요. 그런데 막아서는 안 되는 벽이 너무 많아요. 인도 아이들은 수많은 벽으로 둘러 쌓여 있죠. 교육의 장벽도 바로 그중 하나예요. 우리는 이 벽을 도리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희망의 벽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새천년개발목표(MDGs)에서 추구하는 초등교육의 격차와, 선진국 개도국 간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그런 희망의 벽이요."

산토누의 대답을 들으면서 입이 떡 하니 벌어져 버렸다. 벽을 허무는 노력보다도 더 뛰어난 신의 한 수였다.


"우와. 정말 대단해요! 그럼 돈은 어디서 벌어요? 어디 지원이라도 받나요?"

"지원받는 건 없어요. 아무리 착한 비즈니스를 해도 지원받기 시작하면 항상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럴 바에야 저희가 직접 벌기로 했지요. 지자체(지역 정부)와 타 기업을 통해 돈을 벌어요."


왜 지자체와 타 기업에서 돈을 주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크라티가 덧붙였다.

"쉽게 말해 한 교육장을 해당 지역 단체나 기업이 사는 거예요. 대신 3년간은 우리가 돈을 받고 맡게 돼요. 그러면 우리는 그 돈으로 교육장을 만들고 교육장이 잘 돌아가도록 관리하고 또 아이들이 이용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연구도 하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쉽게 컴퓨터를 통해 자가 교육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그렇게 돈을 지불하는 대신 지자체나 기업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또 직간접적으로 광고도 할 수가 있어요."

그제야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는다. 대답을 듣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 '우리나라에 있는 500여 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 중 얼마나 많은 기업이 정부지원 없이도 자립할 수 있을까?'  

사회적 기업이 영리 기업만큼이나 경쟁력 있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어느새 교육장이 눈앞이다.


학교 벽 교육장에는 수줍음이 가득한 인도 소녀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다.

"애들아 안녕! 뭐 하고 있어?"

"(수줍어하며) 안녕하세요. 퍼즐 게임하고 있어요."

방과 후마다 친구들과 이곳에 들러 컴퓨터를 한단다. 컴퓨터 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 친구들과 게임도 하고 싶다는 소녀들은 천진난만한 한국의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마침 이 곳 센터 관리자가 나와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 궁금해 묻자, 자랑스러운 얼굴로 곧장 대답했다.

"전 자주 이 곳을 들러, 아이들이 컴퓨터를 쓰다 궁금해하는 점들을 알려줘요. 그리고 컴퓨터나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을 하지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컴퓨터를 쓸 수 있는지 피드백해주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애들이 컴퓨터 실력이 늘어나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거든요. 이거 은근 경쟁이에요. 하하"



-

그렇게 홀인더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 곳곳에 있는 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 많은 벽들이 모두 홀인더월 프로젝트로 가득 찬다면 얼마나 좋을까.'

-

세상엔 아직도 지나지게 많은 벽들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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