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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14. 2020

오래된 미래, 에콜로지 센터에서 미래를 묻다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6)



나에겐 죽을 동, 살 동 고생해가며 라다크에 들어온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법한 ‘오래된 미래’라는 책 때문이다.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께서 설립하신 에콜로지 센터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책에서는 센터의 내용부터는 더 심도 있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길눈이 꽤 밝은 난데도 지도로 에콜로지 센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지나가는 한 라다크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는데, 아주머니는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 에콜로지 센터를 묻는 관광객은 드물어서 깜짝 놀랐네요. 거긴 어쩐 일이세요?”

초등학교 선생님인 스팔제스 돌마 아주머니는 태어났을 때부터 레에서 살아온 토박이셨다.


함께 길을 걸으며 스팔제스 돌마 아주머니께 책의 내용이 실제인지 ‘레’의 변화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아주머니. 책에서 라다크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정말 라다크가 많이 변했나요? 아주머니가 어렸을 때 라다크는 어땠어요?”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좀 전과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럼요. 아주 많이 변했죠. 예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걸어 다녔어요. 차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죠. 그런데 보시면 알겠지만 지금은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차를 타고 다니죠. 또 이렇게 크고 높은 건물도 많지 않았고요. 시장에서 파는 물건들도 죄다 예전엔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 투성이에요. 예전에는 자급자족해서 우리가 만들었거든요. 채소도 직접 기르고, 옷도 만들어 입고.”

아주머니께서는 흥분해서 더 이야기를 하시려다가 그만 말을 눌러 담으셨다.

“옛날이 많이 그리우시겠어요, 아주머니. 많은 것들이 편했겠네요 정말”

아주머니께서는 길 옆의 악취가 진동하는 호수를 보며 말을 이으셨다.

“말도 마요. 여기 보이는 호수 있죠? 지금은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차고, 물 고여서 초록색이지요? 예전에는 여기서 여름만 되면 수영하고 놀고 또 이 물을 마시기도 했어요.”

“네? 이 물을요?!”

아주머니와 쓸쓸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에콜로지 센터 문을 열었다.   

사전에 연락을 취하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지만, ‘소남 걀손’ 에콜로지 센터장님은 예정에도 없던 불청객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레’에서 20Km 떨어진 ‘피앙’ 출신의 센터장님은 에콜로지 센터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랑스럽게 설명해주었다.

“우리 센터는 헬레나 호지 여사님의 뜻을 받들어, 라다크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목적으로 해요. 지금은 대체 에너지 관련 일을 주로 한답니다. 태양열 주택 난방, 태양열 발전기 등을 보급하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다음 대답을 이어 나갔다.

“겨울철 난방을 하기 위해선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우리 지역 사람들은 그런 화석연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오느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특히 레는 겨울에 아주 추운데, 태양열을 사용하면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 보다 약 15%가량 난방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요. 집이 태양열 난방으로 집을 데우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태양열 이야기를 듣자, 겨울철 농사도 태양열로 한다는 이야기를 주워 들었던 게 떠올랐다.

“저, 겨울에 농사를 지을 때도 태양열 에너지를 쓴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사실 라다크의 겨울은 아주 추워서 농사를 거의 지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태양열에너지를 이용했더니 농사가 훨씬 수월해졌어요. 낮에 받아 둔 태양열로, 비닐하우스 내를 식물이 자라기에 적정한 온도를 맞춰주게 했죠. 그래서 겨울에도 농사를 짓게 도왔어요.”   


이야기를 마친 센터장님은 센터 곳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전시장에서는 라다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미래의 라다크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모형이 불과했지만 보자마자 괜히 섬뜩했다. 각종 쓰레기가 길거리에 휘날리고, 강물은 썩은 체 있는 모습. 라다크 젊은이들이 모두 외국 브랜드로 가득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 그곳엔 겪어서는 안 될 ‘미래’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에콜로지 센터에서 나오며 조금은 부끄러웠다. 서구화에 대응해 주도적으로 문화를 수용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해 나가는 그들 앞에서, 배낭부터 옷, 양말에서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는 없고, 여행을 하며 콜라와 햄버거를 누구보다 갈망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손에 들린 에콜로지 센터 안내 책자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의 비전은 문화와 환경이 공존하는 라다크의 지속 가능한 미래다.’





*에콜로지 센터는,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건립한 친환경을 주제로 한 연구소 겸 전시관이다. 라다크가 여행객들을 품에 안고부터 4년이 지난 후인, 1978년. 라다키 언어학자였던 헬레나 호지 여사는 천년 이상 끈끈한 발전을 이뤄온 라다크 문화와 환경이 급속한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흔들리는 광경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 변화의 바람은 생각보다 너무 강력했다. 자칫하다간 자신이 사랑한 라다크 사회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Ladakh Project'를 시작했다. 그 결과로 에콜로지 센터가 설립됐고, 1983년에는 당당히 NGO단체로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에콜로지 센터는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을 연구하고 보급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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