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되지 않을 권리

영화 <소울(Soul)> 을 보고

by 양지음

늘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이었다.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여느 또래들처럼 흔한 답을 해가며, 꿈이란 목표를 높이 세워 큰 존재가 되고 싶은 그런 삶. 그래서 새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자신을 보며 속상해지고, 시간이 나이란 걸 하사할수록 그건 훈장이 아니라 꼬리표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아파하지도 않을, 그저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며 걸어갈 길을 걷는 것도 버거운 마음을 가져서, 그래서 시작한 쉼표의 나날들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랬다. 이 짧은 6개월 속에 많은 것들을 해내서 삶의 의미를 다시 되찾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어쩌면 지금의 직업 말고 다른 것들을 꿈꿔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이 순간들을 허투루 쓰지 말라고. 뭐라도 해내야 한다고. 너는 그럴 수 있다고.




좋아하는 동생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 <소울>. 디즈니 픽사에서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즈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꿈꾸는 주인공 ‘조’가 갑작스레 죽음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가장 원하던 꿈의 무대를 앞에 두고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황천길을 되돌아 가다가 새로 태어날 영혼들의 세계로 들어간 조.


그런 조가 오랜 시간 지구별로 떠날 ‘불꽃’을 찾지 못한 ‘22호’ 영혼의 멘토 역할을 맡게 되고 서로가 원하는 조건이 맞아떨어져 조의 영혼을 지구로 돌려보내려다 사고가 난다. 조 대신 조의 몸에 들어간 22호와 그의 옆에 있던 고양이 몸에 들어간 조의 영혼이 만들어내는 대환장 파티 중간중간 생각할 거리들이 참 많은 영화였다.


몸은 다 큰 성인이지만, 새로 태어난 망아지처럼 온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영혼 22호의 모습 이 이상하기보다 당연해 보였던 것은 그가 아직 태어난 적 없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쩌다 보니 조의 몸에 들어가 그토록 가고 싶지 않았던 지구를 여행하는 22호가, (본의 아니게) 지구 통행권을 받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배지 ‘불꽃’을 찾는 순간들. 그 순간에 대해 영화가 묘사해 낸 장면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하나, 바람결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이야기 소리, 황홀한 거리 위의 즉흥연주와 노래까지.




22호가 몇백 년 동안 찾지 못해 괴로웠던, 지구에 살러가기 위해 꼭 필요한 마지막 ‘불꽃’ 배지는 목표도, 꿈도, 직업도 아닌 어쩌면 그저 ‘삶이란 걸 살아 보고 싶은 의지’가 아니었을까. 내가 무언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이 즐거운 것들을 지구별에서 꼭 한 번 살며 해보고 싶다는 기대, 그렇게 삶을 기다리며 반짝이는 설렘이 마음속에 가득 찰 때에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삶이 즐거웠던 게 언제였는지 되돌아본다. 찰나의 순간들이 경이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런 순간들을 가져본 적이 없어 지금 길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으나 그걸 바라보고 기억할 여유가 없어 그저 잊어버렸는지.




인생은 음악과 다르다는 조의 말에도, 계속해서 “나 방금 jazzing 했어.”라며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내던 22호의 말을 기억해본다. 인생은, 음악과 다르지 않다. 모든 구간이 다 연주되어야 하나의 곡을 완성할 수 있는 음악. 그래서 그 악보 속에서는 어느 음표도, 어느 쉼표 하나도 불필요한 것이 없다.


그 곡이 모두 연주된 뒤에는, 그대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여질 것이다. 그대가 어떤 목표를 이루었고, 무엇이 되었는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얼마나 꾸준히 그 악보를 완주했는지만이 중요할, 곡의 제목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훌륭한 누군가가,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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