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건네는 진심 어린 편지, 잘 읽어줬으면 좋겠어.
편지를 쓰는 동안 생각했다. 이건 주어가 '너'인 문장을 자주 쓰게 되는 장르라고. 영영 나로밖에 못 사는 나에게 편지 쓰기는 그래서 다행으로 느껴진다. / 31. 편지의 주어- 이슬아 지음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는 내 경험에 비추어 보게 되는 많은 상황과 경험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약 반쯤 읽은 지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위와 아래에 나올 두 인용구 때문이었다.
이슬아 작가님은 수필에서 모든 가족들을 이름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작가님의 어머님을 '복희'라는 본명으로 지칭한다. 수필집에 수록된 공감이 되는 많은 글들 중에서 특히 엄마, 복희님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자연스레 우리 엄마에 대한 생각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 박여사님에게 편지를 써보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눈물 고이는 일이 많아졌어.
이 문장을 다 적기도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에 갑자기 쏟아져서 벌써 눈물이 흘러. 아마 이 편지를 끝내기도 전에 많이 울 것 같아.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자식은 결국 부모의 나이를 먹고 자란다는 걸 본 적이 있거든. 그때 처음으로 내 엄마로서 박여사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박여사를 생각해본 것 같아.
나를 갖지 않아서 예상치 못하게 '엄마'의 삶을 빨리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보냈을 엄마의 27살을 생각해본 적 있어? 혹시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시도해봤을 많은 경험들과 도전들이 아쉽지는 않았어?
복희는 가끔 생각할까. 그녀가 될 뻔한 자신의 모습을. 놓쳐서 날려버린 기회와 가능성들을. 그게 아쉬울까. 혹시 아무렇지도 않을까/ 32. 흩어지는 자아 - 이슬아 지음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내가 없는 시간의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아. 어렸을 적 이모, 삼촌들과 외할머니가 담가놓은 과일주를 몰래 먹다가 거하게 취했다는 이야기라든가, 외할머니를 찾아가기 위해 차로도 20분이 넘게 걸리는 그 먼길을 5살때 혼자 걸었다는 이야기, 컴퓨터를 처음 샀을 때 뉴질랜드 사람과 인터넷으로 채팅했다는 이야기 등 내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인간 박여사을 알아가는 기분이 참 새롭거든.
내가 새로운 도전에 있어서 현실과 타협하려고 할 때마다 등 떠밀어서 세상을 보게 해 준 건 엄마였어. 호주에 갈 때도, 뉴질랜드에 올 때도, 운전을 처음 할까 말까 할 때도, 새로운 도전에 겁낼 때마다 할 수 있다며 엄마가 보내준 무한한 믿음이 나를 이끌어왔던 것 같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자퇴한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내가 스스로 그 선택을 책임질 수만 있다면 자퇴하라고 했었지. 어떠한 선택을 하던 나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건 엄마 덕분이라는 걸 31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네.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허를 찌르는 말을 하거나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현상을 보거든. 그래서 엄마랑 있으면 특별할 일 없는 일상에서도 웃을 일이 많은 것 같아. 엄마랑 보내는 사소한 일상들이 이렇게 그리울 줄 알았다면 사진으로, 영상으로 더 기록해둘 걸 그랬어. 통화도 자주 하지만 아무래도 얼굴 보며 한 공간에 있는 것과 통화는 다르니까..
내가 여기 살면서 가장 그리운 건 역시 엄마랑 집에서 티비 보면서 수다 떠는 거야.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연예인 이야기도 하고, 비평가라도 된 것 마냥 우리끼리 신랄하게 드라마를 평가하면서. 그리고 다음 날에는 슬렁슬렁 걸어서 영화관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는 거지.
엄마는 자막 읽는 거 싫어해서 외국영화는 잘 안보잖아. 그런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보러 갔던 거 기억나? 지금 찾아보니까 우리가 처음으로 아빠를 떠나 이사를 갔던 해였어. 12살의 나에겐 그 영화관이 참 컸는데 그곳에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과 거미가 가득 나오는 스크린을 보면서 엄마가 기겁했던 게 왜인지 모르게 아직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나의 10대 시절 가장 선명한 엄마와의 기억은 아무래도 수능날인 것 같아.
그 날 아침엔 내 점심 도시락을 위해 새벽부터 엄마가 요리하던 볶음밥 냄새에 눈을 떴어. 그리고 혹시나 엇갈리지 않게 엄마가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지. 기나긴 시험이 끝나자마자 학교로 쏟아질 듯 들어오는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엄마를 찾았어. 수많은 인파를 지나며 혹시 엄마가 안온 건 아닐까 불안했던 그 감정도 아직 선명해. 그리고 약속대로 정문 앞에서 날 기다리는 엄마를 보자마자 그때까지 인지하지 못하던 긴장이 풀어지면서 눈물 쏟았던 것까지 참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20대 중반이 돼서야 엄마를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본 게 된 것 같아. 엄마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이,
아이 둘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엄마의 30대와 40대는 참 힘들었을 것 같아.
그래도 솔직히 엄마를 전부 이해한다고 하지는 못하겠어. 엄마가 처리하겠다고 하는 그 많은 일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왜 작은 일이 폭탄이 될 만큼 터지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바라는지, 수많은 경험을 하고서도 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거든.
엄마가 필요할 때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겁이 나. 가끔 엄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 먼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속상하기도 하고.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아서 엄마한테 용돈도 경제적으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나는 아직도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답답해. 무엇보다 내가 내 인생을 생각해보겠다며 보내는 이 시간들이 엄마에게는 없었을 사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엄마한테 참 미안해.
엄마에게 미안한 많은 순간들 중에 가장 마음에 깊게 남은 건 역시 엄마의 폐경을 모르고 지나갔던 것이더라고. 그때 옆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성숙한 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내 인생만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예민하기만 했던 고등학생이었지. 엄마가 필요할 때 힘이 되는 딸이어야 하는데, 나는 엄마 마음에 생채기를 많이 냈던 딸인 것 같아. 그래서 엄마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나나 봐, 지은 죄가 많아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을 하자면, 나는 엄마가 술도 줄였으면 좋겠고 운동도 하면서 스스로를 좀 챙겼으면 좋겠어. 특히 술. 나도 성인이 돼서 술을 마시다 보니까 술이 필요한 순간이 있더라고. 근데 술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더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지.
엄마가 술에 의지한다는 걸 너무 오래 봐왔기에 그리고 지금도 술이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에 참 마음이 아파. 그걸 해결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오래전에 진지하게 같이 생각해봐야 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지금 사는 곳에서 엄마의 삶이 너무나 외롭다는 걸 알아. 근데 외롭다는 이유로 엄마의 하루하루를 무심히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하루가 우울하게 시간을 때우는 나날이기보다는 바람을 쐬고 생기를 느끼는 시간들로 가득하기를 바라.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게.
저번에 전화로 아이를 안 낳을 거라는 나에게 하나만 낳아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했던 말 기억나?
근데 있잖아 엄마, 나는 엄마가 했던 그 많은 희생과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아마 나는 평생 아이는 갖지 않을 것 같아.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냥 이렇게 엄마가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만 받으면서 남은 생을 살고 싶어.
나는 밤마다 기도해. 엄마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오래오래 내 인생에 머물러 달라고.
엄마의 인생만으로도 힘들었을텐데, 엄마 마음에 생채기만 내는 두 자식을 놓지 않고 키워줘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워.
엄마와 딸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로, 내 인생을 함께하는 사람이 엄마, '박여사'여서 나는 참 행복해.
그러니까 앞으로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힘들면 조금은 마음을 터놓고 얘기했으면 좋겠어. 혼자만 끙끙 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가까이 살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그게 안되니까 지금처럼 주기적으로 전화로 서로의 일상적인 하루를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고, 시시콜콜한 드라마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자.
아까 낮에도 통화했듯이 올해 안에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엄마의 급한일부터 끄고, 내년에는 엄마 아빠의 뉴질랜드 방문을 한 번 추진해보자. 그리고 나면 호주 여행 때보다 더 재밌는 우리만의 추억을 다시 한번 만들어보는 거지. 이번에는 갈수록 좋아지는 숙소를 예약해서 호주에서의 실수를 만회하겠어!
(아빠는 몰랐으면 하지만) 엄마가 60살이 될 때쯤엔 엄마와 딸 둘이 가는 여행도 한번 갔으면 해. 한국도 뉴질랜드도 아닌 제3국으로 가서 한 일주일-이주일 정도 우리끼리 놀다 오는 거지. 아빠 은퇴하면 유럽여행도 보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둘 다 이뤄내려면 내가 빨리 일을 시작해야겠어.
엄마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오래오래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