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밥'이다.
우리 아들 딸은 밥 먹는 시간이 제각각이다. 어릴 때는 4인용 식탁에 앉아 오손도손 밥을 먹곤 했지만 이제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각자 자기 스케줄이 있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밥을 먹는다.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 아들과 딸에게 다른 메뉴를 차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말이 되면 일어나는 시간도 달라 부모의 아침밥 숙제는 오후 2시가 돼도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들 밥과의 전쟁은 그동안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나는 설거지도 잘했고, 화장실 청소도, 집 청소도 잘했다. 이런 일들은 그저 몸을 쓰면 된다. 하지만 요리만큼은 나한테 시키지 말라고 저항하고 있었다.
요리는 우선 냉장고 속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냉장고를 열면 바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떠올라야 한다. 무턱대고 새로운 요리를 했다가 냉장고에 쌓여있는 식재료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입맛도 까다로워졌다. 그리고 요즘 애들은 반찬을 먹지 않다 보니 뭔가 눈길을 사로잡는 신선한 메인 요리가 있어야 했다. 주말 정도에나 시간이 나는 나에게는 요리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과제였다.
아내는 아무리 청소와 설거지는 집안일의 10%로 안된다며, 결국 요리를 해야 진정한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나를 압박했다.
어느 날 요리 문제로 아내와 큰 다툼을 한 후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리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 내려놓으려고 노력해 보니, 문득 내가 아이들의 밥을 차려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고 먹는 걸 아내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은 스스로 독립적이어야 하며 의존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가치관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미역국 한번, 된장국 한번 제대로 끓여보지 않은 내가 아이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주말에 잠깐 나는 자유시간을 요리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지쳐있는 아내를 보고, 유튜브에서 '요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유튜버 몇 명이 심플하게 레시피를 설명해 주는 영상들이 쏟아졌다. 나는 그 영상들을 보며 레시피를 내가 애용하는 워크플로이를 활용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백종원 채널은 고맙게도 음식 만드는 레시피가 '더 보기'에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좋았다.
레시피를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느껴졌다. 이건 무슨 맛이 날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행 갈 때 즐겨 먹던 팟타이, 공심채와 같은 요리도 있었다.
"그래 이번 주말부터 요리에 도전해 보자"
그렇게 쉬워 보이면서 먹고 싶은 요리 레시피를 정리해서 집에 없는 식재료를 사고 첫 요리인 '닭곰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레시피 한 줄 읽고 따라 해보고, 다음 해보고 따라 해보고, 나는 실수하면 망칠까 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이게 결국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아내가 이런저런 참견을 하니 듣기 싫어졌다. 극도로 민감해진 나는 아내에게 쏘아붙였다.
"저리 좀 가 있어! 참견하지 말고"
두 시간이 지났나 보다. 싱크대는 요리하다 쓴 그릇, 수저, 계량컵, 냄비로 수북했다. 식탁 위에는 간장, 미림, 설탕 등 각종 조미료가 널브러졌다.
나는 밥을 먹어야 설거지 거리가 나오는 줄 알았더니, 요리하면서 나온 설거지 거리가 훨씬 더 많았다. 요리를 다 만들기도 전에 설거지 거리에 파묻혀 버렸다.
두 시간 정도를 씨름하고 나서 닭곰탕 한 그릇이 나왔다. 국물이 구수하고 정말 음식점보다 더 더 맛있게 느껴졌다. 요리 소리에 잠에서 깬 아이들이 처음 본 메뉴에 신기해하며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좋아했다. 아내는 내가 만든 '늦은' 아침을 아이들과 먹으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순간 내가 40이 넘어서 처음으로 이런 음식을 만들었다는 게 미안했다. 누군가는 매일 세끼 이러한 노력을 들여 나에게 밥을 차려줬을 것이 아닌가?
그 이후 나는 아내에게 주말 식사를 내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시간을 내서 레시피를 찾아 정리해 놓고, 주말에 먹을 요리를 선정해서 필요한 식재료를 미리 주문했다. 가끔 힘든 날은 볶음밥으로 때우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하는 요리가 맛있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즐겁게 먹었다.
내가 만든 요리를 아이들이 처음 맛을 볼 때는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맛을 보는 것을 보며 평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대와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종종 골뱅이 무침을 만들어 맥주 한잔을 한다. 다음 날 해장하기 위해 골뱅이 무침을 하면서 남은 황태를 가지고 황태 해장국도 끓인다.
남이 해준 밥을 먹었을 때 몰랐던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직접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밥을 해줄 수 있는 날을 헤아려보니 아들은 1년 남짓 남았다. 딸이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들어가면 더욱 기회가 없어진다. 아빠가 해준 음식의 따뜻한 기억을 남겨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이제서라도 요리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이렇게 나는 오늘 하루 아빠가 더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