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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13. 2020

6학년 딸, 아빠랑 발리 여행 어때?

딸과 단둘이 발리 여행도전기

딸과 단둘이 여행을 가면 어떨까? 딸과 나의 관계는 사실 좀 서먹서먹하다. 반면에 딸과 아내는 톰과 제리처럼 매일 투닥투닥 가깝다.


하지만 난 딸이 엄마와 잘 맞는 성향이어서 가까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빠인 내가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리고 내가 첫째인 아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딸은 엄마 쪽으로 더 달라붙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딸은 아내를 무척 괴롭힌다. 딸의 성격은 강한 걸 크러쉬 스타일이다. 반면 아내는 유순해서 내가 보기엔 딸이 엄마를 항상 놀리고 괴롭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내는 딸과 단 둘이 여행 가는 것을 아직 두려워한다. 체력도 감당이 안되고 딸을 맞추는 게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끔 아내 없이 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면 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훨씬 차분해지고 엄마한테 짓궂게 굴던 모습도 없다. 어른스럽고,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진지한 면도 보인다.  그러다 엄마가 나타나면 금세 장난스럽고 가끔은 고약하고 어린양 부리며, 칭얼대는 천상 어린이로 바뀐다


그런데 나와 딸은 단둘이 있을 때 뭔가 어색하다. 아들은 친구 같고 뭔가 더 강력하게 연결된 듯한 느낌이 있는데, 딸은 아직 나와 보낸 시간이 적어서 그런지 조금만 지나면 '이제 뭐하지?' 하며 심심해한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대화가 끊긴다. 딸이 아직은 5학년이고 어려서 내가 장난을 치면 까르르 받아주지만 이대로 중학교에 가고 사춘기가 오면 지금의 거리감이 큰 벽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딸도 아빠와 같이 공부하자고 하고, 같이 공유하는 주제를 늘려가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딸은 독립심과 경쟁심이 강해서 내가 개입할 여지도 크게 없고, 딸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딸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러기 위해선 나와 친한 아들, 딸과 친한 아내가 없어야 했다. 그리고 딸이 아빠한테 의지해야만 하는 뭔가 절박한 상황이 필요했다. 그리고 연애할 때 썼던 기술인 함께 긴장되고 스릴 넘치는 경험을 같이 해야 했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그게 여행이 아닐까? 국내보다는 해외로 나가야 나와 딸 사이의 어색함을 의지하는 마음 친근함 등으로 극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난 더 늦기 전에 딸의 기억 속에 새겨질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딸은 아주 활동적이고 운동도 잘해서 관광보다는 체험이 많은 곳으로, 아직 우리 가족이 가보지 않은 곳이면서,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곳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발리'가 떠올랐다. 십 몇년전 기억도 안나는 옛날 '발리에서 생긴일'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였다. 나와 아내는 '로맨틱'한 발리로 첫 해외여행인 신혼여행을 갔다. 신혼여행도 얼떨떨한데, 첫 해외여행이라 더 얼떨떨했던 발리는 매일 비가 와서 항상 아쉬운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


그래서 발리로 결정했다. 아내와 간 신혼여행지로 6학년 딸과 아빠가 간다. 아무것도 몰랐던 20대 중반 모든 것이 설레고 기대에 찼지만 아직 미래가 두렵고 멋모를 때였던 15년 전 그 발리에 딸과 간다면 어떨가?


정말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그땐 가진 것도 없고 가능성만 있는 나를 선택해준 아내를 위해 발리를 갔다면, 이젠 딸과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기 위해 발리를 간다.


싱가포르를 경유해가는 항공편이라 가는데만 10시간이 걸린다. 아직 딸과 한 번도 긴 시간을 둘이 보낸 적이 없어 걱정스럽지만 또 두근거리기도 한다.  딸이 아빠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가족여행을 가면 항상 가족 전체를 돌보느라 가장 어린 딸의 욕구를 자주 양보시켰던 기억에 이번에는 정말 딸이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를 모든 들어주고 싶다.


이번에는 오로지 딸을 위해서, 딸이 주인공이 되는 여행을 준비해볼까 한다.


그래서 숙소를 고르는데, 투어를 알아보는데 온통 딸 생각뿐이다. 딸의 특성과 체력, 딸의 즐거움을 느끼는 요소 등 모든 상황에 딸을 떠올리며 준비한다.


'아 이렇게 온통 딸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이미 이 여행의 목적은 이미 반절 달성되었다.


비행기 예약은 130일 전에 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이제 3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난 마음속으로 딸과 발리에 유명한 여행지를 돌고 있고, 래프팅을 하고, 워터 붐 파크에 가서 놀고 있다.


딸의 설레는 표정, 딸의 신나는 웃음, 딸과의 즐거운 대화, 호텔에서 밤에 같이 볼 영화, 이제 곧 현실이 된다. 이렇게 딸과 생에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단 둘이 여행이 곧 온다. 너무나 즐겁고 설렌다. 이번 주말에는 딸이 좋아하는 '배틀그라운드'를 배워야겠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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