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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11. 2020

5학년 아들, 수학 60점

아빠와 아들의 공부 도전기

어느  날 아들이 수학 60점을 받았다며 상심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 지 모른다고 걱정했고, 아내는 이제 학원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난 학원은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알아가는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점점 불어나는 사교육비도 부담됐지만, 난 정말 학원에 돈을 갖다 받치는 게 아깝고 싫었다. 


아내는 "그렇게 말하는 건 쉽지, 아들을 생각하는 것 같고 이상적이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그냥 저렇게 내버려 두는 게 아들의 미래를 위하는 걸까? 어떻게 5학년 어린이가 공부하는 방법을 척척 알아서 할 수 있어"


'정말 어쩔 수 없이 다들 이렇게 학원을 보내게 되는 건가? 그냥 내가 한번 아들과 공부해볼까?'


나는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을 위험이 가장 크다는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 가르치기'를 해볼까 생각했다.  우선 내가 어떤 짐을 짊어져야 할까? 퇴근 후 사교모임도 야근도, 취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난 출퇴근이 하루에 4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내가 아들과의 공부하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약속만 해놓고 자꾸 지키지 못해 아들만 실망시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한편으로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회사일도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커지는데, 회사 동료들과 술 한잔도 못하고, 집에 와서 또 책상에 앉아야 하는 게 나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지만 학원에 아들을 내몰긴 싫고, 아들이 혼자 공부하기엔 어리고, 아내에게 큰소리친 것도 있어, 한번 시작해보기로 했다. 


난 '공부'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피로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식에 대한 호기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아 갈 때의 즐거움은 없고, 시험, 경쟁, 대학, 직업으로 연결되는 공부가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안중에 없고, 나의 지적 성숙과는 무관하게 내가 선택할 기회도 없이 무작위로 쏟아져 내리는 억지 공부가 싫었다. 


그래서 난 아들을 '공부시킨다'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수학이라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놀이처럼 재밌게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공부'라는 주제는 아들과 내가 한 배를 탄 공동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알려주고 배우는 게 아니라 같이 탐구하고 알아나가는 것이다. 오히려 20년간 수학을 놓은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화이트보드를 샀다. 새로 산 문제집을 앞에 놓고 아들과 같이 책상에 나란히 앉았다. 순간 어색함이 흘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들과 시작할지 막막했다.


"아들, 이것은 말이야 이런 개념인데, 자 여기 연습문제 한번 풀어볼까"


"네"


머뭇거리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아들은 문제를 하나 둘 풀어나가기 시작했고, 중간중간 계속 막히는 부분이 나왔다. 그러다 아들은 갑자기 


"아빠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애들을 괴롭히는 친구가 있는데......" 


공부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학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사실 거의 없었던 듯했다. 난 연필을 놓고 그게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 친구 때문에 뭐가 속상했는지, 선생님은 어떻게 했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십여분을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난 다시 연필을 들었다. 


"그래 이제 그럼 다음 문제 한번 더 풀어볼까" 


그런데 한 문제를 더 풀다가 아들은 다시 자기 주변 이야기를 하나, 둘 털어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몇 개 안 되는 문제를 풀었다. 책상을 정리하고 시간이 늦어 아들과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빠랑 공부하니 재밌어?"  "아빠랑 같이 하니 좋아"


난 아들을 꼭 끌어안고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아들 미안해. 그동안 아빠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너에게 시간을 제대로 내준 적이 없었구나. 네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일상에서 어떤 생각과 느낌을 받았는지 아빠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구나'


그렇게 하루, 이틀 공부하다 수다 떨다 공부하다 수다 떨다 같이 자면서 옛날 아빠가 공부하다가 벌어진 웃긴 일화를 이야기해주고, 할아버지가 아빠를 가르쳐주면서 웃겼던 일, 할머니가 공부를 너무 심하게 시켜서 싸웠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들과 나는 꼭 새로이 연애하는 연인처럼 친해지게 되었다.


사실 공부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나눌 수 있는 공통 관심사 말이다. '공부'는 어떻게 보면 아들과 나의 공통 관심사로 적합한 것 중 하나였다. 아들도 공부를 못하는 게 싫고, 나도 아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빠는 단순히 학원 선생님이 아니다. 그룹 과외든 개인 과외든 돈을 받은 만큼 가르쳐주는 교육 서비스가 아니다. 아빠는 아들이 성적을 올리는 것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들의 모든 면에서 좀 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게 아빠다. 


 아들과 난 '수학'을 같이 시작했지만, 아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주제에 대해, 그게 어떤 과목이든, 철학적 질문이든 갑작스러운 꿈에 대한 이야기든 마음을 다해 대화해 나갔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생각을 조언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사랑을 어느 학원 강사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이제 막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자신과 남을 비교하기 시작하고 열등감과 자신감 속에서 자기가 어디에 서야 할지 두렵고 불안한 5학년 아들에게 마음을 다해 조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학원이 얼마나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아들과 몇 달을 같이 이런 시간을 보내고 처음에 내가 포기해야 했던 나의 즐거움 대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쁨과 설레임, 깊은 소통, 아들에 대한 이해라는 큰 보상을 얻게 되었다.


아들도 내가 2시간이 넘는 퇴근시간으로 힘들지만 책상에 같이 앉아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점점 알게 되었다. 공부라는 힘든 과정에 아들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참여하고 힘든 것을 나누고 함께하려는 나의 진심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 퇴근 후 아들과 공부하는 게 크나큰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신기하게 아들과 점점 친해지면서 그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까? 마치 연애하러 가는 것 마냥 두근거리고 꼭 가고 싶고 재밌고 기다려졌다.


그렇게 해서 아들이 수학을 100점 맞았냐는 물음에는 노코멘트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은 아직도 아빠와 자기 전에 입맞춤을 하고 안아달라고 달려든다. 수개월 전부터 변성기가 와서 목소리가 걸걸해져 점점 징그러워지기 시작하는데도 꼭 자기 전에 아빠를 불러 안아달라고 하고 난 아들을 꼭 안고 돌아온다.


 이제 아들은 EBS 인터넷 강의로 공부한다. 종종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데, 아직까지는 내가 감당할만하지만, 몰래 수학 공부라도 해놔야 하나 고민이다.


내가 조금만 늦었다면 어땠을까? 그때 그냥 학원에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들이 더 커서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 내가 다가갔다면, 내가 아들을 깊게 이해하고 아들이 나의 진심을 느끼고 자기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관계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까?


다행히 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다. 다들 그 무섭다던 중2병 시기가 아들에게도 다가오지만 난 걱정하지 않는다. 다른 아빠들도 한번 시도해보면 좋겠다. 아내에게 맡기지 말고 얼굴도 모르는 학원 강사에게 아들을 내몰지 말고 스스로 자녀를 알아가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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