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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17. 2020

발리의 3월, 녜삐데이?

딸과 발리 여행 준비, 이제 슬슬 준비해볼까?

딸과의 발리 여행을 준비하는 중에 우연히 발리에 3월엔 녜삐데이가 있다는 글을 읽었다.


"우리 여행 일정 3월인데, 녜삐데이가 뭐지?"


녜빼데이는 힌두력으로 1월 1일인데, 발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사일런트 데이라고도 해서, 빛과 소리가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날로, 누구도 밖을 나갈 수 없다고 한다. 관광객도 예외는 아니다.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날이 더 신나듯, 녜삐데이도 그 전날 치러지는 행사가 더 유명하다. 모구모구라 불리는 악귀, 귀신 형상을 한 큰 인형을 만들어 행진을 하고, 마지막엔 이 인형을 불태우는 전통이다. 


불운을 불러오는 악귀를 불태워 없애고, 그다음 날 아무런 소리도, 빛도 새어나가지 않게 해서 악귀가 다시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녜삐데이 수개월 전부터 누가 누가 더 무섭고 실감 나는 악귀 인형을 만드는지 경쟁을 한다고 한다. 


실제 영상을 보면 모구모구를 네 사람이 가마 태우듯이 들고 음악과 춤을 추며 행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새해를 맞이 해 올해 나쁜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것이, 종각에서 종을 타종하는 우리의 행사와 그 의미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 이런 게 있구나, 그런데 녜삐데이가 보통 3월에 있다는데 음력처럼 매년 날짜가 다르네, 뭐 3월? 올해는 언제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작년에는 3월 초쯤이었던 것 같다. 


'그럼 올해는?' 한참을 찾아보니 바로 우리 여행이 끝나는 날의 전날, 3월 25일이 녜삐데이였다.


'말도 안 돼'


녜삐데이에는 단순히 못 나가는 것 정도가 아니라 공항도 폐쇄되고, TV도 안 나오고, 호텔도 방안에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커튼을 걷지 못한다고 한다. 밖에 못 나가니 음식점을 갈 수 없어, 호텔에서 세 끼를 다 먹던가 아니면 전날 음식을 사 와서 호텔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또한 퍼레이트 행사가 있는 전날에는 행사 준비를 위해 점심 이후부터는 차량이 통제되어 우리 호텔이 있는 꾸따 지역은 오후가 되면 차량으로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녜삐데이에 신혼여행이 걸려 오도 가도 못했다. 투어 갔다가 돌아오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체크인을 겨우 했다 등 불편을 겪은 경험이 넘쳐났다.


 여행 중 거의 2일을 호텔에서만 지내야 한다니, 이건 너무 한 것 아닌가? 우리가 한 달씩 여행 가는 것도 아닌데, 짧은 일정에 한 시간이 아쉬운 나에겐 거의 2일을 호텔에 묶여 있어야 한다니 참 곤혹스러웠다.  


'여행을 미뤄야 하나? 아니야 얼마나 기다렸는데 또 기약 없이 기다리고 싶진 않아'


나는 용기를 얻기 위해, 녜삐데이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유튜브도 검색해보고, 외국인이 올린 영상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의외로 오구오구 퍼레이드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날의 의미를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그 날을 맞추어 간 경우도 있었다. 녜삐데이의 하루를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낼 까 나름 즐거운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발리의 가장 큰 종교행사인 침묵의 날, 외국인에게도, 관광객에도 예외가 없는 이 날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이 선물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면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야 우리가 투자한 '돈 값'을 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휴가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어제 휴가 다녀온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휴가를 가서 분단위로 쪼개 혹독한 일정을 소화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와 이제 '진짜 휴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난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르는 딸과의 단둘의 여행을 '단단히' 계획을 짜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녜삐데이에 '아무것도 안 하는', '심지어 밥 먹으러 밖에 나갈 수도 없는' 24시간은 어떤 여행이 될 것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쉼 없이 시간 속을 돌진하려는 나의 각오에 찬물을 끼얹는 녜삐데이가 딸과 나에게 선물을 주려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발리만이 간직한 힌두교의 1월 1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이하는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딸과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다.


3월 25일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여행을 마무리하는 그 날의 기분과 느낌을 글로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 사람들에게 여느 날과 다른 그날, 나와 딸에게 여느 날과 다를 그날의 느낌을 기록하러 발리에 간다. 이번 여행을 가는 의미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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