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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Feb 17. 2020

아들과 왕좌의 게임 보기

아빠!  이건 19금이잖아요

3년 전 대륙의 실수 2탄이라 불리는 중국산 저가 프로젝터를 사고 난 후 우리 가족은 매주 영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난 지난 40년 동안 시대를 주름잡았던 영화와 미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스타워즈 시리즈, 백 튜터 퓨쳐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죠스 시리즈를 비롯해서, 10년 전 인기를 끌었던 미드인  24시 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요새 나오는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까지 불금과 불토에 아이들과 홈시네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과 영화를 보는데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왜 그렇냐며 투덜대는 대사가 나왔다. 아들은 왕좌의 게임이 뭐냐며 물었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순간 고민이 됐다.


"요새 가장 핫한 미드인데, 그게 19금이야. 너무 잔인하고 아들이 보기엔 좀 그래"


왕좌의 게임은 중1 아들이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도 그렇지만, 동성애나 근친상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여러 가문의 권모술수로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인물과 스토리를 중1 아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시대의 핫한 콘텐츠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고 이대로 넘어가는 건 너무 아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명작'들을 꼭꼭 숨어서 보지 않았나. 


차라리 아빠와 같이 본다면 평소라면 꺼내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금지하고 막는 것보다 '왕좌의 게임'의 즐거움을 같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왕좌의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들에게 앞으로 7년을 더 기다리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아들, 이건 사실 19금인데, 아빠가 너무 보여주고 싶어. 우리 보다가 너무 잔인하거나 야한 장면이 나오면 아빠가 앞으로 돌리는 것 괜찮아?"


이렇게 아들과 나는 장장 8 시즌에 달하는 왕좌의 게임을 불금과 불토마다 보기 시작했다. 이젠  매주 금요일까지는 절대 각자가 진도 나가지 않기를 약속하면서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 이 미친 드라마는 아들과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다. 


아들과 난 난쟁이로 태어난 티리온이 어떻게 해서 대너리스의 핸드가 돼가는가?, 존 스노우가 갖고 있는 우직함과 진실함이 어떻게 적이었던 사람들을 한데 모으게 되었는가? 서세이의 끝없는 욕심이 얼마나 모두를 비참하고 외롭게 만드는가? 느끼게 되었고,


타카리엔의 대너리스, 라니스터의 서세이, 스타크의 아리아, 강철군도의 야라이가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적자 관행을 깨고 당당히 야심을 갖고 스토리의 중심이 돼가는 모습에서 이 시대의 변화되는 여성의 위상을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가문의 적장자로서 출신과 배경이 절대적이었던 시대에 무시받던 서자가 왕이 되고, 가문의 확장을 위해 결혼을 통해 팔려가는 여성이 왕이 되고, 태어나면 죽임을 당하던 난쟁이가 왕의 핸드가 되는 이야기에서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가에 대해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주인공인 줄만 알았던 인물들이 허무하게 갑작스럽게 죽을 때 이렇게 인생이 허무하고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감했다.


아들과 나는 대너리스가 용을 타고 제이미의 군사를 박살 내는 장면을 보며 환호를 지르고, 아리아가 타스의 브리엔과 대결하며 엄청난 검술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당장 달려가 피터팬 모형 칼을 사고(아리아 '니들' 정품은 엄청 비싸다), 좀비가 된 용이 그 높은 장벽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덜덜 떨며 경악하면서 주말 밤마다 새벽 1시가 돼서야 잠에 들 수가 있었다.


난 사실 왕좌의 게임을 이미 오래전에 봤다. 이미 스토리를 아는 드라마를 다시 본다는 게 꼭 재밌지 만은 않다. 또한 난 아들과 왕좌의 게임을 보기 위해 한동안 금요일 약속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아들은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서로 왕좌의 게임 이야기만으로도 너무 재밌었다.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관계, 서로 간의 애증, 스토리의 깊이에 감탄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즐거웠다.


항상 난 부모로서 좋은 것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항상 교훈을 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무와 강박이 아들과 나를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아들은 어리니까, 아직 청소년이니까 이건 안돼, 저건 안돼 하는 부모 노릇을 벗어던지고, 아들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아들을 나와 동등한 친구로 생각하고 마음을 열고 나니 같이 하는 게 즐겁고, 그리고 같이 해야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왕좌의 게임을 보면서 아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걱정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껄끄러운 주제에 대해 슬쩍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아빠들이 아들과 무엇을 할까? 어떤 걸 공유할까? 뭘 허용하고 뭘 금지해야 할까? 고민한다. 나도 매 순간 고민이 된다. '내가 옳은 것인가?',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인가' 불안하고 두렵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나니, 아들과 난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 맺을 수 있었다. 아빠로서 양보해야 하고, 제공해야 하고, 기다려야만 하는 게 아닌, 아들로서 아빠의 지시를 받고 금지를 당하며, 아빠가 쳐놓은 울타리를 넘지 말아야 되는 게 아닌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을 느끼게 되었다. 


난 어릴 때 아빠와 인디아나존스 2를 봤을 때의 즐거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영화를 아들에게 보여줄 때 아들을 반응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두근거림은 10번도 본 영화를 또 보는 '지루함'을 잊게하는 것을 넘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을 나에게 선물했다.  


우리 아들도 내 나이가 돼서 자기 자식과 함께 왕좌의 게임을 같이 볼 날이 올까? '할아버지랑 그때 너무 재밌게 봤던 드라마'라고 하면서..... 나는 아들에게도 평생 남을 선물을 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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