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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Mar 18. 2020

네가 번 돈은 네가 결정할 수 있어

공부하면 한 시간에 천 원 어때?

아들을 보습학원에 보내지 않으면서 대략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아빠와 같이 공부한 시간만큼 시간당 얼마씩 적립해서 아들과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차곡차곡 통장에 돈이 쌓이다 보니 차마 이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아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아낀 기특한 돈을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남겨놓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 통장은 아들의 '미래 통장'으로 이름 짓고 아들이 커서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싶은 경험이나 교육이 있을 때 사용하자고 했다. 이 미래 통장에는 한 달에 15만 원을 아빠가 넣고, 친척들이 주는 용돈을 넣기로 했다. 이 통장의 원칙은 '일단 돈을 넣으면 20살이 될 때까지 뺄 수 없다'였다.   


이렇게 30만 원 중 15만 원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남겨놓았지만, 정작 아들에게는 7~8년 후의 모일 돈이 당장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난 아들이 스스로 공부한 보람을 느끼게 해 주면서 아들의 노력으로 발생한 우리 가족의 경제적 이득을 나눠주고 싶었다.


'아빠 엄마가 일을 하면 돈을 벌듯이 아들도 공부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을 쓰는 것을 아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면 금지와 허락 두 가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보통의 경우 아이들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 자신의 욕구만 생각하며 조르고, 부모 입장에서는 좀 더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전적인 허용보다는 타협이나 금지를 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금지든 허용이든 부모가 내리는 결정이란 점에서는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저항하거나 받아들이는 선택만 할 수 있다. 난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미숙해서 결정할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고 믿듯이, 스스로 게임을 절제할 수 있다고 믿듯이, 돈에 대해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40년을 이미 살아본 어른이 보기에 아이들이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 아닐까  


난 아들에게 '노력 통장'을 만들어줬다. 아들이 한 시간 공부하면 천원이 쌓이는 마법의 통장이다. 공부한 시간은 아들이 정직하게 기록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공부한 시간에 천 원을 곱해서 넣어주기로 했다. 이 통장의 원칙은 '여기 있는 돈은 아들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아들은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방학 때는 14만 원 정도를 벌었다. 난 아들이 번 돈 말고도 원래 아들로서 받아왔던 용돈 2만 원을 추가로 넣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한 달 용돈 15만 원은 아들 친구들이 볼 땐 상상하기 힘든 용돈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몇 달만에 60만 원을 모아버렸다.


"아빠 나 좋은 스마트폰 사고 싶어요"


아들이 갖고 싶은 것은 아이폰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들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의 스마트폰은 모두 공짜폰이었다. 난 비싼 스마트폰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아들에게도 종종 그런 말을 해주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새 스마트폰들의 기능과 특징, 사용방법에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아들 아이폰은 거의 백만 원 가까이하는데, 그렇게 모은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아?"   


"아니요. 전 너무 갖고 싶어요"


만약 아들과 한 약속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로 그렇게 비싼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10여만 원이 되는 한 달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 사실 초등학생이 편의점에서 군것질 거리를 아무리 사도 10만 원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들 손을 잡고 아이폰을 사러 갔다.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그 이후에도 2년 동안 스마트폰 3번이나 바꿨다. 첫 번째 아이폰 8+는 딸이 물려받았고, 그다음 갤럭시 9은 아내에게 중고로 팔았다. 그다음 갤럭시 노트 9은 나에게 팔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은 아이폰 XS를 가로수길 애플 매장에 가서 샀다.


수년간 무료폰만 써왔던 우리 가족은 모두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첨단 가족이 되었다. 노트9을 써보니  사실 너무 좋았다. 특히 삼성 페이는 정말 나의 삶을 너무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아들이 중고로 나에게 팔려고 할 때 보여준 인터넷 시세보다 10만 원 싸게 사서 기분도 좋았다.


아들은 그 후로 돈을 모아서 대형 모니터도 사고, 아이폰 에어팟도 샀다. 아들이 힘들게 모은 돈을 쓸 때 나는 여러 조언을 해주고 같이 의논도 많이 했다. 가끔은 '그건 너무 비싼데'라고 말리기도 했지만, 아들의 결정권을 존중하고 아들이 산 좋은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이제 아들은 돈을 모아서 무언가를 살 때 자신의 욕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걸까? 샀다가 후회하면 어쩌지? 이거 말고 다른 게 더 좋은가? 더 싼 건 없나? 하고 나에게 의견을 물어온다. 소비에 보다 신중해진 아들이 부쩍 더 성숙하게 느껴진다.


사실 아들이 스스로 모은 돈으로 산 많은 것들을 다른 부모들은 그냥 사준다. 학년이 올라가면 컴퓨터를 사주고, 친구들 못지않은 스마트폰을 사준다. 하지만 난 내가 보기에 더 쓸 수 있는 것을 바꿔달라고 하거나 딱히 필요 없는 것을 사달라고 하면 거절한다. 어떻게 보면 아들은 남들보다 힘든 과정을 거쳐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자랑스러워한다. 어느 친구도 갖지 못한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권리는 스스로 공부해서 얻어낸 정당한 자유이다. 난 아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때 어떤 느낌인지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아들의 욕구가 어린아이라고 무시받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게 해주고 싶었다.


아들의 '미래 통장'은 3년도 안돼 9백만 원 가까이 모였다. 딸도 오빠를 따라 '미래 통장'을 만들었고 딸의 '노력 통장'은 아들과 달리 애완동물 용품을 사는데 쓰이고 있다. 애완동물 용품에 돈을 쓰는 게 나에게는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수의사가 미래 꿈인 6학년 딸의 욕구를 존중한다.


요새들어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생일 때 용돈을 넣은 봉투를 주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와 아내를 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의 방법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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