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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Jan 10. 2024

마흔이 되기 전에는 몰라요

마흔의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면 ‘종합캔디선물세트’ 같은 것을 꺼내 주시곤 했어요. 온갖 종류의 사탕이 가득 찬 꾸러미 에서 무얼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했죠. 저는 신호등사탕과 버터스카치, 유가(제 또래는 알거라 믿어요)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모든 종류의 ‘패키지 상품’이 그러하듯 그 안에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탕들도 껴 있었습니다. 계피사탕이나 박하사탕 같은 것들이요. 도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탕을 ‘선물세트’에 넣는 걸까요?


하지만 명확한 사탕 취향에도 불구하고, 저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싫어하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해야 나중에 편하더라’는 경험이 쌓여서 그렇게 변한 게 아니라, 제가 기억하는 한 전 언제나 싫은 것을 먼저 제거해 버려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었어요.


선물세트 속 사탕을 남김없이 몽땅 먹어야 하는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먹지 못하게 될 상황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무법자 동생이 나타난다거나, 배탈이 난다거나…), 언제나 계피사탕부터 먹기 시작하는 건 어떤 마음 때문일까요?


‘싫은 걸 지금 다 없애버리면 나중에는 좋은 것만 가득할지 몰라.’

‘지금 좋은 걸 다 먹었다가 나중에 싫은 것만 남게 되면 어떡해'


이제는 인생에서 신호등사탕만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나중'이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사는 동안 계피사탕과 신호등사탕이 무작위로 계속해서 리필이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계피사탕은 완벽히 사라지지 않아요!! 다행인 건, 신호등사탕도 마찬가지라는 것이고요.


내일이 없는 듯이 사는 것도 문제지만, 내일만 대비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예요. 그렇게 대비한 내일이 정작 내일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요. 원하는 삶의 방향이라던가, (사탕) 취향,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치 같은 것들은 계속해서 변하거든요.


마흔이 되기 전에는 몰라요. 마흔의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요.


그러니 괜히 먼 미래를 걱정하느라 힘빼지 말아요. 어려서 ‘나중을 대비하느라' ‘눈앞의 삶에 치여서' 차곡차곡 뒤로 미뤄둔 소망들이 마흔이 된 제 발 앞에 쌓여 있어요. 그중 어떤 것은 이미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또 어떤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었어요. 소망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때 그냥 해볼걸,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됐었는데, 나를 좀 더 돌봐줄걸, 더 미친 듯이(?!) 놀아볼걸.. 하는 후회가 남아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자꾸만 차선을 선택하고, 참고, 포기하고, 좋아하는 것을 미루는 걸 반복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참다 보면 또 참아지거든요. 습관이 돼요.


저는 계피사탕을 먼저 집고야 마는 저의 성향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마흔의 저는 일부러라도 신호등사탕을 냅다 까서 입에 넣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탕 꾸러미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먼저 집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이런 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싶겠지만, 의외로 지금의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당장 하고,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조금 미뤄둬도 괜찮아요. 쉰 살의 저는 지금보다 더 어른이니까, 어려운 일은 어른이 잘 알아서 하겠죠. 모든 일을 지금의 내가 다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쉰의 저는 분명 이렇게 말할 거라 믿어요.

‘네가 신호등 사탕 실컷 먹어, 나 지금은 계피사탕 되게 잘 먹어!'


여러분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섞여 있는 꾸러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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