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해도 될 자유에 대해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It is great to suck at something’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읽었어요. 무언가를 형편없이 못하는 것의 즐거움에 대한 내용이에요. 저자는 같은 제목으로 단행본도 출간했는데, 한국에서는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영문 제목이 더 마음에 듭니다.
저자인 캐런 리날디(Karen Rinaldi)는 마흔에 서핑을 시작했다고 해요. 15년간 수천 달러를 써 가며 한 해의 절반 이상을 서핑에 투자했지만 여전히 실력이 ‘구리다’고 합니다. 본인도, 보는 사람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못한대요. 근데 그게 정말 좋답니다. ‘못해도 될 자유'라고 저자는 말해요.
응, 알아. 나 구려. 근데 뭐?라고 말하는 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도전할 만큼 어떤 일에 애정을 유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고요. 하지만 남에게 내보일 만한 수준에 오르지 못해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즐기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저자는 말해요.
그냥 취미로 시작한 일이어도 하다 보면 잘하게 될 거라는(혹은 잘해야 한다는)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잘할 필요가 없는 일이어도, 결국 실력이 늘지 않으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지고요. 못할 것 같아서 아예 시도도 안 한 일은 또 얼마나 많게요?
성인발레를 배운 적이 있어요. 어쩌다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한 발레는 그동안 내가 왜 이걸 몰랐을까 싶을 만큼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발레스튜디오의 한쪽 벽면이 모조리 거울로 되어 있어서, 선생님의 우아한 시범 동작에 이어서 푸드덕 거리는 제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에요. 바를 잡고 하는 동작이나 가만히 서서하는 동작은 그나마 괜찮아요. 점프동작(인터넷에 ‘앙트르샤' 또는 ‘샹쥬망'을 한번 검색해 보세요)은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깃털처럼 날아올라서 두 다리를 앞뒤로 빠르게 교차한 다음 제자리로 사뿐히 착지하는 선생님과는 달리 저는 로켓처럼 솟아올라 빠르게 추락했어요. 그 사이 상체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다리는 공중에서 엉키고, 양팔은 볼썽사나운 현수막처럼 펄럭거렸고요, 표정은 왜... 모든 게 잘못되었습니다. 웃참챌린지 우승자 같던 선생님도 그 모습에는 무너지고 말았어요.
코로나 때문에 발레 학원을 가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그 사이 저는 취미농구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10개월이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드리블을 못합니다. 룰도 아직 이해를 못 했어요(왼손은 거들뿐?). 농구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그거 아주 거친 운동이라고 하던데, 많이 다친다던데, 하고 걱정을 해요. 그런 건, 제대로 된 시합 같은 걸 할 수 있을 때나 해당되는 말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농구공과 저, 이렇게 둘만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거든요. 코치샘이 저를 어떻게 참고 견디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뭐든지 남들보다 잘해야만 살아남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엔 뭐든 이미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고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그놈의 경쟁력.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방식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이제는 하다못해 일 이외에 전문가 수준으로 잘하는 취미 하나쯤은 개발해야 한다고도 하잖아요. 저는 반대로 한 번 말해볼까 봐요. 어른이 되면 더럽게 못하는 취미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물론, 돈은 필요하고, 그러려면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 차별성을 갖추려는 노력도 중요해요. 하지만 살면서 재능도 없고 쓸모도 없지만 그저 즐길 수 있는 일 하나쯤 갖는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상상해 봅니다.
SNS에 올릴 수도 없고, 올려도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을 그런 일을, 심지어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와, 나 진짜 못한다’라고 혼자 낄낄대며 즐길 수 있다는 것. 잘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스스로 정한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 때문에 실망하는 일 없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끈질기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건 얼마나 즐거울까요.
남들보다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만두었거나, 혹은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재미 하나 빼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 하나쯤은 가져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