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는 거 이제 그만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저는 한가롭게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어요. 누군가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더니 다짜고짜 바통을 손에 쥐어주며 달리라고 재촉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제 등을 떠밀며 달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그 표정과 말투가 너무 단호해서 저는 얼떨결에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등 뒤에서 더 빨리 못 뛰냐는 비난이 들려왔어요. 저는 더욱 힘을 짜내어 달렸습니다.
재촉하는 목소리는 점점 많아졌어요. 누군가는 제 자세가 엉성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호흡이 틀렸다고 했어요. 저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죠.
지적받은 부분을 고치려 노력하면서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뛰고 또 뛰었어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미 공원에서 멀리 떨어졌고, 지칠 대로 지쳤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미션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 때문에 괴로웠어요.
그런데 저는 왜 달리기 시작했을까요. 도대체 왜 공원에서 이렇게 멀리 와버린 걸까요. 마흔 즈음 제가 느낀 기분이 딱 그랬어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바통을 들고 달리는 기분이요.
사회 초년생 때 만나 지금까지 종종 연락하는 직장선배가 있습니다. 제가 30대이고, 선배가 40대일 때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뒤돌아 보면 단 한순간도 허투루 산 적이 없는데,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저는 이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후회할 만한 지점이 없는데 후회가 남는 인생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요? 아, 오해는 마세요. 선배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어떤 ‘객관적인' 잣대로 봐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에 열심이었나, 왜, 어디로 가는 길이었나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그렇게 열심히 일궈놓은 모든 것들이 내 것 같지 않은 순간이 오나 봅니다.
출처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도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 사람이 깜깜한 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대요.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어요?”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한참 동안 그를 도와 열쇠를 찾던 행인이 다시 물었어요.
“아무리 찾아도 여긴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 잃어버린 게 맞아요?”
“아니요, 저기 골목 끝 집 앞에서 떨어뜨렸어요.”
“아니, 집 앞에서 떨어뜨린 열쇠를 왜 여기서 찾아요!”
“집 앞 골목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요.”
애초에 이곳에 답이 없는데, 아무리 열심히 찾는다 한들 답이 나올 리 없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알고 있는 곳, 익숙하고 밝은 곳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정작 답이 있는 곳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너무나 막막한 어둠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계속 찾다 보면 여기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며, ‘적어도 나는 열심히 찾고 있다'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계속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저는 인생에 과연 찾아야 하는 답이라는 게 있나, 후회가 그렇게까지 나쁜 일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지만, 그건 다음번에 차차 얘기하기로 해요.
열심히 살아온 지난 시간에 딱히 후회되는 지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선배처럼, 그리고 꿈속의 저처럼 어딘가에서 점점 멀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혹시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지금보다 열심히 하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있나요? 어쩌면 더 빨리 뛰는 대신 잠깐 멈춰야 할 때인지도 몰라요. 어두운 골목 끝 집 앞으로 돌아가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가만 기다렸다가 더듬더듬 허공에 손을 뻗어보아야 할 때요.
내 것이 아닌 트랙에 뛰어 들어가 기진맥진할 때까지 달리지 마세요. 모르는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곳을 가리키며 바통을 쥐어주면 최선을 다해 달리는 대신 냅다 집어던져 버리고 아름다운 공원 산책을 계속하세요.
바통 들고 어디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