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흔로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잌 Jan 23. 2024

고차원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에서 시작해 보세요

모든 일의 ‘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해결방법도 마련할 수 있는 거라고요. ‘왜’를 한 번 묻는 것도 모자라서 어떤 원인에 대해 ‘그건 또 왜 그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라며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 파고 파고 또 파고들기를 반복했습니다. 


일을 할 때에는 꽤나 유용한 스킬이었는지 몰라도 사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특히 감정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작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오래, 자주, 깊게 파고들었던 문제는 단연 ‘나는 왜 이럴까?’입니다. 


주로 불안이나 죄책감, 수치심, 분노, 무력감 등 부정적인 감정에 맞닥뜨렸을 때 그 원인을 알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질문의 뉘앙스가 ‘정말 궁금하네에~, 왜일까~?’가 아니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왜 또 그러는 건데?’에 더 가깝다는 건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그러니 그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상처 주는 것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달리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건 정신적인 문제니까 당연히 정신적인 원인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주 다른 차원의 경험을 아기를 기르면서 하게 됐어요. 갓난아기를 키우다 보면 얘가 이번엔 왜 또 우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때, 우는 이유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하기보다는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몇 가지 행동을 재빠르게 실행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배가 고프거나 아프거나, 춥거나 덥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졸리거나, 자극이 강하거나 약하거나… 대개는 이 정도 선에서 대충 파악이 가능해요. 몸의 편안이 제 1 우선순위입니다. 만약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면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아기에 대해서는 이런 실전경험을 획득한 저이지만 막상 제가 불편하고 짜증이 날 때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택합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고학력의 ‘배운 존재'.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그러므로 좀 더 고차원적인 접근방식을 대입해야 마땅한 그런 존재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아요. 몸의 편안은 그렇게 쉽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모든 문제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으로 완벽히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걸로 전혀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또 없더라고요. 내 ‘대단한’ 머리가 아니라 몸이 어떤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싫어하는지, 반대로 어떤 것을 즐기는지를 알아차리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마흔이 되면 몸은 참기를 거부하거든요.


지금보다 어렸을 때에는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체력적으로 무리한 일을 밀어붙이는 것도 가능했어요. 하지만 중년의 몸은 더 이상 참지 않아요. 참다 참다 파업을 하기 시작하거든요. 몸이 안 따라 주면 그만입니다. 괜히 제 몸의 비위를 건드려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요즘은 뭔가 기분이 싸하고 스트레스가 올라오려고 하면, ‘이번엔 또 왜! 뭐! 뭐가 문제야!’라고 원인을 캐묻기보다 재빨리 '기분이 별로야? 오케이! 알았어!‘라며 일단 급한 불 끄기에 들어갑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아주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거예요. 저는 쉽게 긴장을 하고, 긴장을 하면 숨을 참는 버릇이 있습니다. 제가 병뚜껑이 한 번에 열리지 않는 것 따위의 사소한 일에 숨을 참고 있다면 요즘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예전에는 왜 이렇게 별 거 아닌 거에 잔뜩 긴장을 할까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요즘은 그 어떤 것도 묻기 전에 일단 긴장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또 예를 들자면, 저는 배고픈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배가 고픈 걸 조금도 참지 못해요. 하지만 동시에 포만감을 느끼는 것도 싫어해요(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허기가 가신 상태가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당장 입에 집어넣을 수 있는 간식들을 곳곳에 둡니다. 화가 나려고 하기 전에 입에 바로 뭔가를 집어넣어주면 밀려올 감정의 재앙을 손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방금 한 실수 때문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거나, 상대방이 나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게 분명하다거나, 이 사회가 너무 부조리하다거나, 하는 생각들로 폭주하기 전에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거죠. 


요즘 저는 제 몸이 편안한 것에 꽤 신경을 씁니다. 이 스트레스의 '정신적, 근본적, 고차원적' 이유를 몰라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몇가지 행동들을 빠르게 취해서 일단 저를 편하게 해주는 거죠.


내가 지금 배가 고픈가? 너무 부른가? 소화가 안 되는 걸 먹었나? 몸의 어느 부분이 불편한가? 잠을 못 잤나? 물은 충분히 마셨나?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했나? 좋은 대화를 한지 너무 오래됐나? 이런 질문들을 잊지 말고 스스로에게 해주세요. 


이걸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때가서 고민하면 돼요.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후회가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