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흔로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잌 Mar 05. 2024

자기소개 어떻게 하고 계세요?

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로 시작하는 자기소개는 제 또래라면 알 거예요. 이건 ‘아임파인땡큐, 앤쥬?’ 같이 툭 치면 튀어나오는 자동완성 문장 같은 거거든요.


나를 제대로 소개하려면 응당 탄생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 소개할 말이 그리도 없었던 걸까요?


나와 관련한 수많은 정보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서 상대방에게 전달할지, 어떤 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소개할지를 결정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아무리 많이 해도 쉽지 않은 게 자기소개인 것 같아요. 


특히 마흔을 앞두고 커리어에 큰 변화를 주려고 했던 때에는 저를 누구라고 소개해야 할지 참 막막했습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해왔던 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달라서 그 사이에서 저를 설명할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저를 소개할 말이 없다는 것이 마치 저라는 사람의 존재가 희미하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직업은 저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영역 중 하나일 뿐인데, 커리어에서 잠시 방황하는 기간 동안 저를 설명할 단어를 통째로 잃어버린 기분을 느껴버렸습니다. 


그동안 업무와 관계없는 자리에서조차 늘 직업으로 스스로를 소개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자소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20대 후반, 유학을 가려고 여러 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던 시절이었어요. 수많은 자소서에 영웅 대서사시에 가까운 소설을 거리낌 없이 써내려 가던 저였는데, 어떤 학교의 에세이 첫 질문에서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What matters most to you, and why?’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에세이 질문이 상당히 잘게 나뉘어 각각 구체적인 항목들을 물었어요. ‘리더십 경험을 쓰시오' ‘살면서 이룬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가요?’ ‘실패한 경험과 그로부터 배운 점을 쓰시오'와 같은 질문에 답변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니요? 그 에세이에서는 리더십 경험이나 성취, 지원동기,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세부 질문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어떻게든 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욱여넣어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저 질문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인생에서 어떤 게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와 같은 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과에 진학하고 싶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어떤 회사로 이직하고 싶어?’와 같이 인생의 각 단계마다 잘게 쪼개어진 질문에 그때그때 답하면서 살아왔어요. 


저것이 결국은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이 뭐야?’ ‘너의 업적이 뭐야?’ ‘어디 살아?’ ‘사회나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이 뭐야?’가 아니라 ‘너는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가 결국 저를 설명하는 핵심인 거죠.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회사원 말고, 누구누구의 엄마 말고, 제가 좋아하는 것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저를 소개하고 싶고, 그 소개가 제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을 야금야금 모으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공개해 볼까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저의 감정과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든, 그중에서도 특히 글이라는 매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살고 싶은 욕망이 큽니다.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역량도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저를 글 쓰는 사람, 혹은 글 쓰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를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아니, 근데 제가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도 아니잖아요?(쳇) 


지금 제 삶을 맴돌고 있는 키워드는 아마도 주체성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마흔이라는 시기에 집중하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에 골몰하는 것은 그동안 제가 살아온 길이 과연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나, 앞으로도 계속 원하는 방향인가에 대한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갭이어를 가지고, 커리어를 바꾸고, 주 3일 근무를 하고, 살고 싶은 집을 찾아 이사를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옮기고, 하고 싶은 일들을 일단 해나가는 이유는 제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실험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주변에서 목격한 적이 없는, ‘보통의 평범한 삶'이 아닌 ‘대안적인 삶'이 지금 당장은 만족감을 주지만 과연 계속 이렇게 살아도 큰일이 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겠지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본인을 소개하시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몸에 대한 공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