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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Feb 29. 2024

아픈 몸에 대한 공포

아픔을 안고 살아가기

주말 동안 심하게 앓았습니다. 독감에 걸렸거든요. 원래 열이 나지 않는 체질인데 4시간 간격으로 해열진통제를 먹어도 체온이 39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이틀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요.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조금 살아났어요. 최근 들어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나 싶어요.


이런저런 질병에 걸리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 아프면서는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다가올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 제가 아는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노화하는 몸, 질병에 취약해지고 회복력은 점점 떨어질 것이 분명한 몸에 대해서, 그리고 그에 필수적으로 따라올 통증에 대해 모르니까 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저는 통증을 극히 싫어합니다. 조금도 참을 수 없어요. 그런 제가 앞으로 견뎌야 할 통증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제 마음이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농담처럼 ‘갱년기가 중2병을 이긴대!’라고 하지만 저는 그게 더 이상 웃기지 않아요. 아니, 갱년기가 도대체 어떻길래 중2병을 이긴다는 걸까요? 그건 인생에서 나름의 이유로 힘들게 지나고 있는 시기(갱년기와 사춘기)를 가벼운 농담거리로 후려치는 지독한 표현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는 갱년기와 완경이 엄마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다주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분명 옆에서 목격을 했는데도 관심이 없었어요. 나이 들어간다는 건 모두가 겪는 문제인데도 우리는 이걸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치부하고 충분히 나누지 않는 것 같아요. 


노화에 대해서는 눈에 드러나는 미적인 부분에 관한 이야기만 줄곧 들어왔던 것 같아요. 혹은 제가 그런 이야기에 주목을 했을 수도 있고요. 주름이 생긴다, 피부가 처진다, 안색이 칙칙해진다, 군살이 붙는다, 그래서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식의 얘기들이요.


거울을 보고 생긋 웃어봐도 예전처럼 예쁘지 않아요(가끔 화장실 거울로 보면 자신이 예뻐 보일 때 있잖아요?). 그래서 제 사진을 거의 찍지 않게 됐고요. 뭘 해도 예쁜 6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제가 늙어가고 있는 게 더 실감이 납니다. 


노화가 외모에 미치는 영향이 도드라지기는 하지만 그보다 기능하는 몸에 대해 더 신경을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사람들이 잘 얘기하지 않는 부분이요. 


몸의 여기저기가 아픕니다. 급격한 변화가 아니기에 정확히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도 많고, 아직은 참을 수 있는 정도라서 자꾸만 무시하고 있지만 분명 몸은 조금씩 늙어가고 있어요. 


어른들이 앉고 일어설 때 왜 ‘아구구' 소리를 내는지 알겠고요, 손발이 차서 항상 고생이던 제가 어느 순간 열감이 느껴져서 잠이 안 올 때가 생깁니다. 무릎과 고관절이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손가락 마디가 시큰합니다. 온몸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것처럼 피곤할 때가 있어요. 생리도 뒤죽박죽이고요. 몸의 반응 속도가 느려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잡거나 피할 수 없고, 눈도 침침해요. 몸이 제가 예상했던 것과 벗어나는 반응을 할 때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원래 어려서부터 자잘한 실수도 많고 깜박하는 일도 잦았지만 요즘 깜박깜박할 때는 기분이 묘합니다. 방금 전에 뭘 하려고 했는지 아예! 전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밝혔듯이 저에겐 아주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예전처럼 그저 ‘으이그 또 그러네'하고 가볍게 넘어가지지가 않아요.


제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총명함을 잃어가고 있구나를 어렴풋이 느낍니다. 조금 서글픈 마음도 들어요.


제가 더 이상 젊고 활력 넘치는 몸을 가질 수는 없다는 걸 빠르게 인정하고, 조금씩 늙어가는 몸과 잘 타협하고 보살피며 살아가려고요. 슬프지만 슬퍼만 하기에는 아직 제 몸이 해줘야 하는 일이 많아요. 


몸이 아프고 피곤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기 어렵습니다. 하던 일을 해내기도 벅차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한 마음을 나누는 것도 다 체력이 허락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는 웬만해선 몸이 비명을 지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야'라는 말을 굳게 믿고 몸을 이리저리 혹사시키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모든 건 정신력이 아니라 체력의 문제’라는 걸 알고,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서 몸의 변화를 미세하게 살피면서 살려고 합니다. 


다이어트보다는 영양을 생각하고, 소화가 잘 안 되니까 소식을 합니다. 술은 안 마시는 게 아니라 이제 못 마시는 것이 됐고요. 무릎이나 발목에 무리가 덜 가는 방식으로 걷기 위해 언제나 엉덩이 근육을 쓰는 것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몸의 가동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스트레칭을 해주고요. 노화와 완경에 대한 책도 찾아 읽고 있어요.


어린 저에게 한마디만 해줄 수 있다면 ‘제발 몸을 잘 보살펴!’라고 소리치고 싶어요(‘지금 당장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말을 포기하고서라도…).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70살의 제가 지금 귓가에 소리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열심히 몸을 돌봐야겠어요. 


영양제 챙겨 먹고, 힘들면 쉬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우울해지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주변에 꼭 얘기하세요. 노화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가지기보다 ‘잘 관리된 몸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몸소 실험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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