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까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제 기억으로 지금까지 총 16번의 이사를 했어요. 부모님의 이사를 ‘따라간' 것이 7번, 공부하고 일하면서 외국 생활을 하느라 거처를 옮긴 것이 5번, 결혼 8년 차에 벌써 4번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큼 오래 살거나 특별히 마음을 둔 곳이 없어서 한 동네에서 쭉 자란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동네 친구도 없고, 오랜 단골의 개념도 희박합니다. 어릴 때는 전학을 가서 매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내향인인 저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경험이 쌓여 집과 동네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직접 이사를 주도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상당히 귀찮은 일이긴 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외국 생활을 할 때에는 저에게 선택권이랄 것이 없었지만, 결혼 후 4번의 이사는 순전히 저의 결정이었어요. 어쩔 수 없는 외부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디에 정착하고 싶은지 쉽게 고를 수가 없어서 다양한 동네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사를 다니다 보니 비슷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동네에 살 것인가 만큼이나 어떤 형태의 집인가도 중요했습니다.
외국 생활 중 한 번을 제외하고 저는 아파트를 떠나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지만 제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꿈에서 찾아가는 곳, 좋아하는 공간 하면 떠올리는 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댁입니다.
외가는 마당 한편에 작은 연못이 있는 오래된 주택이었어요. 옆으로 긴 형태의 마루 끝에는 부엌과 연결된 작은 방이 있었는데요, 마루에서 계단 한 칸쯤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의 방 한쪽 벽에는 다락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어요. 사다리 같이 좁고 높은 계단을 기어 올라가면 앉아도 머리가 천장에 닿는 작은 공간이 있었죠. 저는 온갖 잡동사니 틈새에 숨어서 혼자 책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어른들이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집은 구석구석 빠짐없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친가는 한옥집이었어요. 본채와 별채, 그 사이에 마당이 있고, 큰 대청마루가 있었어요. 가을이면 마당을 뛰어다니며 잠자리를 잡았고, 마루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며 간식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으라면 한옥의 대청마루예요. 지붕은 있지만 벽이 없어서 바람이 통하는 공간, 햇살이 뜨거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붕 밑에 편히 앉아서 야외에 있는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안도 밖도 아닌 ‘반 외부공간'이요. 아파트에서는 찾기 힘든 이 공간을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몰라요.
신혼집은 베란다가 널찍했지만 철로 앞에 위치한 아파트여서 소음 때문에 베란다 창문을 열 수 없었어요. 그다음부터 살았던 아파트들은 모두 베란다를 확장한 구조였고, 베란다 창도 맘껏 열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작은 창에 테이블을 갖다 놓고 그 앞에 달라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전세 만기일이 다가오던 어느 날, 문득 주택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이사를 가야 할 이유도 없고, 직장, 가족, 편의성, 비용 등 어느 측면에서 보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았어요.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주택단지를 샅샅이 뒤졌어요. 밤마다 임장 유튜브를 보고, 매주 다른 지역의 부동산과 약속을 잡아 매물을 살펴봤습니다. 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으면서도 서울지리에 까막눈이던 제가 수도권의 행정구역 이름과 위치를 줄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어요.
서울 안에서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가 어려워 점점 외곽 쪽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집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안 맞고, 가격이 맞으면 주변 환경이 원하는 조건에 어긋나고, 과연 내가 찾는 집이 있긴 할까 싶을 때쯤 경기도에 위치한 지금 집을 찾았습니다.
주변의 반대와 출퇴근의 불편함, 이사비용 등등을 감수하고서 ‘2년 전세 조건부'로 가족의 동의를 얻어 여름의 끝자락에 이사를 했어요. 대청마루를 갖지는 못했지만 이제 저는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제가 처음 주택살이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다가올 고난이 무엇인지 저는 전혀 몰라요. 주택은 손이 많이 간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는 오늘의 저는 일단 즐겁습니다.
아침마다 정원으로 나갑니다. 아직은 잡초밖에 없는 공간이지만, 눈 뜨자마자 하릴없이 무조건 나가 봅니다. 어느 날은 길냥이가 보란 듯이 잔디 위에 싸놓은 똥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심겨 있는 줄도 몰랐던 장미꽃이 핀 것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데크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서 음악도 듣고, 차도 마시고, 글은 한 줄도 안 쓰면서 노트북만 켜두고 쓸데없이 ‘아, 좋다’만 남발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날들을 많이 쌓아가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서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 수 있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어요. 나를 위로하고 보살피고 신나게 만들어 주는 곳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릴 때는 그다지 강하게 느끼지 못했던 욕구인 것 같습니다.
20-30대 때에는 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어요.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날들이 줄어서인지 지금은 결국 언제나 돌아오게 되는 이 공간이 어느 곳보다도 제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집에 바라는 것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겠어요.
2년의 전세기간이 끝나면 가족들의 소망에 따라 다시 서울의 아파트로 돌아가게 될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이사를 꼭 했어야 했냐라고 묻는다면 전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마음에 드는 곳에 살아보는 경험을 꼭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러고 나면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