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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연 Sep 12. 2022

울프를 읽고나서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



  여성과 픽션.

버지니아 울프가 애초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강연이 들어와서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던 듯 싶다.

그리고 대부분의 강연 준비가 그렇듯 우선은 본인의 삶부터 그리고 세상의 세태와 경향을 되짚어 보았다.

울프는 여성이 본격적으로 글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무렵을 다시금 복기하며 그 당연하면서도 성스러운 행위를 이어가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자문하며 본인이 생각한 것들을 거듭 강조한다.


  그녀는 여성에게 매달 500파운드(우리나라 돈으로 약 78만원)와 글을 쓸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다면 제인 오스틴 등의 거장을 잇는 작가들이 많이 나올거라 확신했다.


  현대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가 김영하는 "사람들이 고전을 두고 미래를 내다 본 작품이라고 칭찬하지만, 이는 사실 미래의 우리가 고전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당시 시대를 뛰어넘는 밝은 발상을 한 것인 동시에 우리는 그녀에게서(고전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이나, 걸작으로 꼽히는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 등의 거장도 결국 든든한 재정적 지원이나 혹은 두둑한 통장 잔고, 안락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집필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에는 어쩐지 허무하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셸리는 애초 이 소설을 내려고 시도했을 때 남편의(남성의) 이름을 빌려야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에도 씁쓸했다.


  울프가 만약 지금의 21세기에서 태어나 살고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해리포터>시리즈를 탄생시킨 조앤롤링처럼 매일 어느 카페 구석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노트북을 펼쳐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글을 썼을까. 또 울프가 쓴 <런던거리 헤매기>의 현대판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소규모로 책 읽는 모임도 열었을까?

그 시대 당시가 아닌 오늘날 그녀의 이름을 딴 독서모임이라든지 작품들이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에서 돈 버는 방법> 이라든가 투자지침서 등에서 '자기만의 방', '500 파운드' 등을 거론하는 것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심한 정신병을 앓기 시작했던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머니의 부재로부터 심해졌다는 그녀의 정신질환은 종국에는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 버렸다. 아마도 그 시절 그 무렵 그녀가 했던 생각들이나 직접 집필했던 작품들을 품기에는 세상이 너무 좁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가 이렇게 신변잡기적으로 뻗어나가는 수필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때문에 읽는내내 흥미로웠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수십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는 점도 그렇다. 심지어 돌고도는 유행처럼 뭇사람들의 독서리스트 한 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도. 


  울프는 알았을까. 21세기 아시아 대한민국의 한 30대 여성이 이렇게 본인의 글을 읽고 그 내용과 철학에 감동받아 독서기록을 하고 있을 줄.


  


  울프의 에세이는 하나의 별도 장르같다.

읽고 있으면 어쩐지 재미가 있고 풍요로워지는 기분을 받으면서도 읽고나면 그 안에서 분명히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게 존재했음을 느낀다. 그것을 캐치한 자는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싶고 또 다른 작품을 찾아 볼 수 밖에 없게 하는 힘이 있다.


  <자기만의방> 이후 1837년에 집필했다고 알려진 <3기니>는 차차 읽어보려고 한다. 년도로만 보면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3년 전쯤 쓴 글이라 어쩐지 침잠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를 소재로 다룬 영화 <디아워스>를 보다가 너무 우울해져서 20분도 채 안돼 껐던 기억이 있다. 그 영화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들을 건드린다. 질병과 우울 그리고 (심적)고통.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자기만의 방>은 유쾌했다. 세상을 나보다 십년 쯤 더 산 언니가 여동생에게 해주는 조언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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