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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솔지책 Feb 26. 2022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생산성과 효율에 미쳐버린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제니 오델, 김하현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필로우, 2021)

카스미 너무 예쁘죠... 회사를 그만두고 패밀리레스토랑 서버로 일하는 리호코.

“열심히 하지 않는 걸 택해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의 리호코(아리무라 카스미)는 남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도맡아 하다 회사에서 고립되고 맙니다. 사실 그런 문제가 일어나는 건 쟤가 일을 못해서 아니야? 리호코에게 일을 시킨 사람들은 어느새 뒤로 물러나 리호코를 욕하고 있었어요.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데, 주어진 걸 성실하게 해냈을 뿐인데, 늘 그렇게 살아왔는데······. 리호코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극중에서 리호코는 20대 후반 여성으로 한국의 20대 후반과 비슷한 삶을 거치며 보냈어요. 공부했고, 대학에 갔고,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죠. 그런 리호코의 삶은 온통 열심과 성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전세계 많은 밀레니얼의 모습이기도 하죠.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게으른 거라고, 나태해지는 순간 도태되는 거라고, 남들은 네가 노는 그 순간에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얘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삶을 열심히 굴려냈을 겁니다.


문제는 이 열심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냐, 인 거겠죠. 공교롭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으며 앤 헬렌 피터슨이 쓰고 박다솜이 옮긴 《요즘 애들》을 함께 읽어서 더욱더 그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쉴 때조차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지는 않았나? 보다 더 잘 쉬었다고 느끼기 위해 결과물이 눈에 보이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나?(예를 들면 건강에도 좋고 힙한 운동복 차림으로 정상에서 사진 찍을 수 있는 등산이나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에 영감을 받기 위해 가는 전시) 이게 진짜 쉬는 게 맞았나? 앤 헬렌 피터슨 말대로 내가 열심히 살아서 얻은 건 더 많은 노동뿐인 건 아닐까?


제니 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현대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힘들어하는지, 관심경제가 얼마나 생산성과 효율에 목을 매게 하는지, 우리가 진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누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써내려갑니다.


그의 글에 따르면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예를 들어 주식이나 코인을 하지 않는 것, 어떻게든 부수입을 마련하지 않는 것 등)을 끊임없이 불안해합니다. 점점 더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가만 있는 자신이 못나 보이죠.


제니 오델은 이런 상태를 떨치려면 관심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과 돈에, 좋아요를 받아야 하는 인스타그램 등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안 된다는 거죠. 원래 인간이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경주마처럼 그곳만 보고 달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SNS를 비활성화하기도 하지만 제니 오델은 “완벽한 중단”도 해결책은 아니라고 봐요. 핸드폰과 노트북을 던져버리고 숲속에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제니 오델은 그래서 공원에 가서 새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DOING NOTHING이 아닌 불안과 열등감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관심경제가 아닌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기도 한 거죠. 일이 아닌 다른 것에, SNS가 아닌 제3의장소에 자신을 둘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겁니다.



물론 제니 오델도 책에서 인정했듯 이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만 가능합니다. 쉴 새 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데에 정신을 돌릴 아무런 여유조차 없을 거예요. 제니 오델은 유명한 예술가이자 좋은 대학의 교수입니다. 번듯한 집이 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깊게 사유할 수도 있죠. 무엇보다 대낮의 공원에 가서 새를 관찰할 시간도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에게는 대낮에 공원에 가서 새를 관찰하는 일이 어렵지만,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은 조금씩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가까운 거리는 이어폰을 빼고 다니게 됐어요(책에서 흘려보냈던 소리들에 집중하는 누군가의 얘기도 나오거든요). 늘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살아서 몰랐지만 새 소리도 굉장히 크고, 옆 자리 가족의 귀여운 대화도 가끔씩 들려왔어요. 지하철 덜컹거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요.


이럴 때마다 핸드폰을 보고 싶은 충동과 도착한 메일을 열어보고 싶은 욕망과 싸워야 하긴 했지만, 제니 오델처럼 꾸준히 다른 곳에 관심을 두다 보면 충동과 욕망이 조금씩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 쉬는 것조차 생산적으로 쉬고 있을 모든 분께, 제니 오델의 책을 권해요.



좋았던 문장들

—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초라한 나와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을 견뎌야 해.”

— 나를 그토록 공포에 떨게 한 것, 인간적이고 신체적인 시간을 사는 한 인간으로서의 감각과 인식을 불쾌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금전적으로 장려한 잡담의 확산과 온라인에서 히스테리가 퍼져 나가는 엄청난 속도다.

— 여기에 나는 공개적으로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어려움,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을 덧붙이고 싶다. 이는 내가 현재의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특성 중 하나다. 아무리 중대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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