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미국 언니의 별거 아닌 이야기들
도저히 방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날씨가 펼쳐지는 요즘이지만..
오늘 읽을 책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기에 그래도 이 계절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갖고 와봤어요.
*제목은 <서울 체크인> 효리 언니의 말입니다. 언니 너무 좋아요..
*사진 오른쪽이 노라 에프런입니다. 왼쪽은 그의 두 번째 남편, 칼 번스타인이에요.
— 개정판이 나오고 나서야 이 책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저는 노라 에프런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시네필과는 거리가 아주 멀고 심지어 천만 영화들도 안 보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haha..
— 별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구입했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의 각본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놀랐어요. 너무 놀랍게도 당연히 저는 보지 않은 영화지만 정말 언젠가 봐야지, 꼭 봐야지, 할 정도로 익숙한 영화들이었으니까요. 노라 에프런은 몰라도 이 영화를 아는 분은 아주 많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책을 읽다 보면 나오지만 노라 에프런이 처음부터 영화 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영화 일을 했기에 어렸을 때부터 업계 사람들과 일에 많이 노출돼 있긴 했지만 노라 에프런은 기자가 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너무 놀랍게도 노라 에프런이 한창 일을 하던 시기는 여자 기자가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신문, 잡지가 정점을 찍던 때였지만 여자가 글을 쓴다고??? 라는 말이 나올 때였죠.
— 노라 에프런도 기자로 시작하진 못했어요. 당시 언론사에서 일하던 여자들은 거의 다 우편물 발송을 맡고 있었거든요. 그 일을 꽤 오랫동안 하다 나중에야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돼요.
— 사실 이 과정보다는 당시 호황기를 맞았던 언론계의 분위기 묘사가 굉장히 즐겁게 다가오더라고요. 오래전부터 잡지라는 매체를 좋아했는데 사실 제가 좋아했을 때는 이미 잡지가 내리막길을 단디 찍을 때였고, 지금은 그 누구도 잡지를 보지 않는 것만 같고… 인쇄 매체 자체가 굉장히 쇠락했는데, 쇠락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갈 수 없는 그 시절이 아주 보고싶어지더라고요.
— 책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사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정말 별거 아니에요. 나이를 먹어서 갈수록 기억이 안 난다는 얘기(원제가 ‘I Remember Nothing’인데요, 아마 꼭지 중 하나의 제목일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디저트 레시피, 어렸을 때 봤던 유명인들 얘기, 결혼한 얘기, 이혼한 얘기, 연애한 얘기······.
—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닌 흔한 얘기들이지만 사실 어디에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어요. 게다가 이렇게까지 멋지고 유쾌한 언니가 자기 얘기를 들려주는데 말이죠. 정말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게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 이 책에 실린 꼭지가 다 유쾌하지만 사실 저는 <실패작>이라는 짧은 꼭지가 정말 좋았어요. 제가 앞에서 노라 에프런을 소개할 때 작품 두 개를 말했지만 사실 그가 이 두 개만 만들었겠어요? 각본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도전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는 자신의 수많은 실패를 바라보며 이렇게 썼더라고요.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이 있다.
나는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건,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망했다는 뜻이다.
(…) 실패작을 만들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고통스럽고 굴욕적이다. 고독하고 슬프다.
— 물론 히트작도 만들어냈지만 늘 대중에게 평가를 받는 그가 실패작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꽤 인상 깊더라고요. 내놓는 모든 것마다 혹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삶은 어떤 걸까요? 모든 예술가의 삶이 그러려나요? 아주 짧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글이었어요.
— 이 외에도 저는 그가 경멸하는 이메일에 대해 쓴 <이메일의 여섯 단계>도 좋았습니다. 다른 꼭지도 다 좋았는데 이게 특별히 더 좋았어요.
— 책은 꽤 두꺼운 편인데 페이지는 적은 편이에요. 게다가 꼭지가 길지 않아서 나눠 읽기도 아주 좋습니다. 요즘 같은 날 어디 놀러 가서 가볍게 읽기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어쨌든 슬픈 일이다. 번개가 한 번 내리치고 나면 부모님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혹은 옛 모습 그대로 마법처럼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누구나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약이며 고통을 잊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출산할 때 듣는 상투어기도 하다. 엄마는 아이 낳을 때의 고통을 잊어버린다고들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그 고통을 기억한다. 진짜 잊어버리는 건 사랑이다.
집순이인 저는 어차피 나가지 않지만 날이 좋으니 기분도 덩달아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4월만의 하늘과 볕을 모두 잔뜩 즐기시고 책도 조금씩 읽으실 수 있길!
오늘도 손 번쩍 들어 여러분께 안녕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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