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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Feb 03. 2023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엔, 방부제가 있다.

우아하게 무시하기

방부제 : 미생물의 활동을 막아 물건이 썩지 않게 하는 약.




결혼사진


 나는 남편과 사이가 너무 좋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은 변함없이 나를 최우선으로 아껴주고 사랑해 준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주위에서 남편 잘 만났다는 소리를 지금도 들을 정도이고 우리 부모님조차 아내로서 좀 더 잘하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렇게 나는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 남편 잘 둔 여자였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얻긴 힘든 것인지, 남편은 잘 만났지만 시어머니는 좀 달랐다.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내가 미운 모양인지, 특히 둘이 있을 때, 혹은 혼잣말로 필터링 없이 툭툭 한 마디씩을 던지신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버퍼링이 꽤 걸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은 가볍게 못 들은 척, 무시 아닌 무시를 하고 있다. 

 남편을 잘 둔 덕분에, 그래도 남편의 어머니니까, 아들의 할머니니까,라는 여러 가지 의미부여로 지금까지 버텨온 지 10년. 내 나름대로 잘해왔다. 그러나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같은 시어머니는 여전히 한마디를 툭툭 던지시고, 나는 또 열심히 무시하는,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있어 자주 찾아뵙지 않는다는 것. 결혼은 남편과 둘이서 시작했다는 것. 어쩌다 말씀하시는 그 한마디가 어느 순간 불편해졌고, 그 불편함은 자주 찾아뵙지 않는 형태로 나타났다. 시어머니의 한마디가 내 마음 한편에서 조금이라도 사그라들지 않으면 안 간다는 내 나름의 법칙이 생긴 것이다. 그 부분을 남편도 이해해 주고 시댁에서 일찍 짐 싸서 나오기도 하는 남편을 보면, 새삼 남편 잘 둔 여자가 맞구나 싶다.

그렇기에 이제는 한 마디쯤은, 아니 두세 마디쯤은 남편 얼굴 보며 참고, 아들 얼굴 보며 참을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그저 웃고 못 들은 척하는 나 자신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시간들도 어느덧 훌쩍 지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엔, 방부제가 있어 여전히 그 한마디, 한마디가 생각나고 곱씹게 되고, 가슴 한편을 갑갑하게 한다.




신혼 초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까지 나는 시어머니가 참 좋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편이 말하는 "우리 엄만 달라"라는 일종의 주문을...

(하하하.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말이다.) 그 주문을 믿을 만큼 콩깍지가 씌여있기도 했고, 어머니도 다른 말씀 없으시고 항상 챙겨주시고 이뻐해 주시는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이상형의 시어머니셨다.

그래서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러 종종 나갔을 때에도 나는 시어머니와 맥주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나름 살갑게 잘하는 며느리였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 날, 시댁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친구 며느리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 친구 며느리는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한대. 변호사가 돈을 잘 벌지만, 미국에서는 더 잘 벌어서 미국으로 놀러 오라고 여행도 보내주고 용돈도 받고 그런다네." 

"네~"


한 달 후 시댁을 방문하고 시어머니는 또 친구 며느리 이야기를 해주신다.

"내 친구 며느리는 시아버지 생신에 몰래 와서 상다리 휘어지게 생신상을 차려놓고 파티를 했다네"

"네~"


다음에 또 방문했을 때, 시어머니는 또 친구 며느리 이야기를 해주신다.

"내 친구 며느리는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한대. 변호사가 돈을 잘 벌지만, 미국에서는 더 잘 벌어서 미국으로 놀러 오라고 여행도 보내주고 용돈도 받고 그런다네." 

"네~......(응??)"



그렇다.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명확하고도 정확한 의중을 알 수 있다. 

우리 시어머니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며느리를 돌려까고 계셨다. 철저하게 다른 며느리와 비교하면서, 내 면전에다가 대놓고 말이다.




참으로 무신경한 나는, 같은 말을 3~4번 듣고 나서야 시어머니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며느리를 보며 혼자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시어머니는 계속,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고 계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가 알아서 "며느리 도리"를 다 해라 라는 말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처음에는 꽤 당황스럽고 너무 기분 나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우습나?' '어떻게 저렇게 말씀하시지?'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나는 그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넘어간 나 자신을 칭찬한다.

어떻게 그 상황을 넘어갔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그러고 나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기에 참 잘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시어머니의 의중은 파악이 되었고,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 가에 대해 고민을 꽤 많이 했었다. 시어머니의 말씀대로 살가운 며느리가 되어야 하나, 시부모님께 효도하는 며느리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찰나 했었다.(찰나 라니... 찰나의 순간도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며칠 고민을 한 후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결론을 실행 중이다.

어머니는 내가 효도하는 며느리가 된다 해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기본만 하자.

 - 일주일에 한 번, 전화를 드렸었는데 매일 전화를 안 한다고 서운하다고 하신 적이 있다. 매일 전화드리면 아침저녁으로 전화 안 한다고 서운하다고 하실 것 같다. 당신의 만족을 남에게서 채우려 하지 말라. 나를 100% 만족시키는 타인은 없다.


불편한 말을 들으면서 자주 찾아뵐 필요가 없다.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  300km 가까운 거리를 힘겹게 가서 불편한 말을 들어야 할까? 차라리 300km를 여행 가서 힐링하는 것이 낫겠다.


시어머니의 불편한 말을 웃어넘길 수 있도록 노력하되, 남편에게 상기시킨다.

 - 이젠 혼잣말을 하시든, 다른 며느리와 비교를 하시든 못 들은 척한다. 너무 못 들은 척을 하다 보니 이제는 아들 앞에서도 헐~ 소리가 밖으로 나올 정도로 강한 한마디를 하실 때가 있는데 이 상황은 나중에 꼭 남편에게 집어서 상기시킨다. 남편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어머니는 다른 시어머니와 똑같다는 것을.


 



시어머니의 한마디엔 방부제가 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계속 내 마음 한편에 겹겹이 쌓여 썩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쌓이고 있다.

방부제는 좋은 취지를 가졌지만 먹으면 안 되는 약이다.

그래서 나는 보유하고 있지만 소유하지는 않는다. 

즉, 거리를 두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나는 적당한 거리가 있는 관계여야 한다. 

그것이 모두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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