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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주 Feb 15. 2023

우린 지금도 "용돈"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지칠 때까지.

남편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맨 몸으로 올라왔다. 낮엔 직장에 다니고 밤엔 대리운전을 해가면서 조금씩 상황을 바꿔간 사람이다.


그렇게 만난 남편과 나는 결혼할 때 양가에서 단 1원의 도움도 받지 않고 둘이서 준비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도움 없이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노후가 안정적이지 않았던 양가였기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고, 도움을 줄 상황도 아니었다. 그 부분을 모두 이해했었고, "너희만 잘 살면 된다"라고 말하셨기에...

정말, 우리만 잘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편과 시어머니의 통화를 듣게 되었다.

"용돈" 이야기였다. 

결혼과 동시에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용돈" 줄 것을 요구하셨던 것이었다.  

며느리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신 게 없어서 내세울 명분이 없으셨던 터라, 아들만 붙잡고 말씀하셨던 거였다.


"엄마.. 아빠도 지금 일을 하고 있고, 누나들이 용돈도 주고 있어서 부족한 게 없을 텐데 나한테까지 용돈 이야기를 해야겠어? 결혼 준비하면서 마이너스 난 거랑, 집 대출도 갚아야 하고 우리도 힘들어. 그만해, 더 얘기하지 마."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내가 살짝 물었다.

"용돈을 드려야 하는 거야?"

"그러게. 자꾸 달라고 하시네."

"그럼, 친정도 줘야 하니까 두 배로 준비해야 하는데 어디서 줄여야 할까?"

".... 아직 안 줘도 될 것 같다. 신경 쓰지 마~"





3년 후 아이가 태어났다.

둘이서 살 땐 빌라든, 반지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좋은 환경을 주고 싶었던 우리는, 아파트 전세로 옮겼다. 내 집도 아니고, 은행 대출이자를 내야 하는 우리로서는 좀 버거웠지만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살았다.

남편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했고, 나는 출산하고 채 3개월이 안되어서 직장에 복직했다. 그리고 친정 엄마는 조금의 용돈으로 집에서 같이 살면서 아이를 온전히 케어해 주셨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이가 보고 싶어 찾아온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 용돈을 요구했다.

" 이 정도면 잘 지내고 잘 사는 것 같은데 엄마 용돈 줄 생각은 안 해봤어?"

"우리 지금이 더 힘든데? 엄마는 아들 얼굴 보고 하는 말이 용돈 말고는 없어?"


시어머니가 가신 후,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계속 꾸준히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양쪽 다 줄래?"

"매달 용돈 드리고, 명절, 생신 때마다 드리면 우리는 언제 돈 모으겠어?"

"그건 그렇네. 그럼, 마음대로 해~"


 




그리고 10년이 된 지금, 아직도 시어머니는 용돈을 달라고 요구하신다.


집값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던 때, 서울 전세가 너무 올라서 서울살이가 힘들어진 우리는 경기도로 이사했다.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다행히 적당한 집을 매매했고, 내 집이라는 안정감 속에서 살고 있다.


새로 이사한 집을 보기 위해 올라온 시어머니는 또 아들에게 용돈을 말씀하셨다.

"가구랑 가전도 사고, 이렇게 잘 살면 이젠 엄마 용돈도 줄 수 있는 거 아냐?"

"엄마, 집 이사하고 기분 좋은 날인데 더 이야기하지 말자."

 

잊을만하면 한 달에 한번, 찾아뵐 때 한번, 명절에 한번, 그냥 전화해서 한 번씩..

시어머니는 그렇게 매번 아들에게 용돈을 달라고 하고 돈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남편 피셜이니 사실일 듯.)

"직장 다니고 영업하다 보면 월급 외에 돈이 좀 생기지 않아? 그건 그냥 엄마 주면 안 돼?"

"엄마,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은 엄마가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이렇게 방어했다며, 칭찬해 달라고 말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남편에게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이 어지럽고 답답하다.


남편이 이렇게까지 주지 않는 데에도 이유는 있었다.

아버지가 생활비를 주고, 연금이 나오고, 누나들이 용돈을 주지만, 시어머니는 항상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단다.

"매달 20을 주면 나중엔 30을 달라고 하고, 그러다 40, 50을 달라고 하실 거야. 차라리 안 주는 게 나아."


남편도 알고 있었다.

본인의 어머니가 뭘 해도 만족해하지 않는다는 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용돈 받는 자랑. 그걸 하고 싶어서란 걸.


사실 용돈을 안줘도 된다 라고 말할 순 없다.

어떤 이는 용돈이 표현의 한 방식이고 도리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상황과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각자의 상황과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 전,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지도 않았다.

이른바 [용돈 전쟁]은 결혼 후 생긴 것이다.

그 사실이 참 웃기다.  


양가에 용돈을 드릴 수는 있다.

그리고 용돈을 드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식이 용돈을 줘야한다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시어머니에게는 최대한 늦게 드리고 싶다.


남편이 지금까지는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지만, 에너자이저인 시어머니는 지치지 않을 테니...

참으로 시어머니는 나에게 끊임없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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