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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낭만 Oct 20. 2023

유명하지 않은 곳에서부터

시작




나는 충청남도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학교는 경기도에 있었지만 매번 2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하면서,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수도권에서 지내고 싶은 욕망을 키웠다. 이곳은 너무 작아서 조금만 물건을 넣어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더 거대한 것을 원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언니와 함께 사당에 작은 방을 얻었고, 나는 그때부터 쭉 서울에서 먹고 자고 친구를 사귀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내가 꿈을 키웠던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2018년 여름에 강원도로 이사를 가셨다. 당시 일본에서 지냈던 나는 발 디딘 기억도 희미한 ‘강원도’라는 지역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 생경함은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생전 처음 보는 집에 다다랐을 때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떠날 때는 익숙한 곳을 벗어났지만 돌아올 때는 낯선 지역으로 귀국한 셈이었다.


나는 서울과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은 나에게 가장 안락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충남에 갈 일은 이모를 만나러 갈 때를 제외하면 더는 발생하지 않았고, 강원도는 아는 문제가 전혀 없는 시험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서울역에 입성하면 숨통이 트였다. 가족은 없지만 친구는 있고, 길치라서 가끔 헤매지만 서울만큼 편하게 돌아다니는 지역도 없을 거란 확신이 번뜩 선다. 적어도 나이의 앞자리가 1로 시작할 때는, 이런 감각을 받을 수 없을 거라 여겼는데. 여러모로 묘하다.


나는 사당, 광화문, 영등포, 을지로, 용산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서울을 누볐다. 그중 강북이 나의 신경과 잘 맞는다는 점을 깨달았고 가장 많은 순간을, 눈물을, 기억을 품게 되었다. 좁은 집에서 여러 명이 불편하게 몸을 구기고 자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추억‘이라며 낄낄거렸던 일도, 나미의 <가까이 하고 싶은 그대>를 들으며 초록색 버스에 슬라임처럼 앉아서 피곤함을 부르짖던 일도, 치킨과 맥주를 몸에 쏟아붓고 노래방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던 일도 전부 서울 강북에서 벌어졌다. 나는 그때를 자주 그리워한다. 타임머신이라도 개발되지 않는 이상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내면의 징후를 잘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징후들에 이름이나 문장을 달아주는 일도 빈번해졌다. ‘홀로’와 ‘민감’과 ‘불안‘이 결합된 뭉텅이는 팔다리에 매달려서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고향에 살았던 시기, 나는 이 뭉텅이들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근원 모를 짜증만 무수히 발산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서 한때 고향을 미워했다) 그러나, 오롯이 나의 결정으로 살게 된 낯선 서울은 자아와 대화할 기회를 꽤 자주 생겼고, 뭉텅이에 이름을 붙이면서 변덕스럽지만 무탈한 동거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물론 서울이 뼛속까지 안락한 건 절대 아니다. 타이밍이 우습게도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 줄곧 병원 신세를 졌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계신 원주에서 요양 생활을 거치기도 했다. 마냥 낯설어서 오래 붙어있기 싫었던 강원도가 조금씩 편해짐을 느꼈다. 아주 가끔은 지긋지긋했던 충남의 중소도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더 이상 나의 지역이 아니어도 영원히 품을 수밖에 없는 도시. 특정한 지역에 잠깐이라도 머물면 쉽사리 잊을 수 없다는 점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나에게 온양은, 서울은, 원주는. 어떤 의미로 남았고 남겨지는 중이고 남을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매번 부채감처럼 잔존해있었다.


문득 빈칸이었던 지역에 족적을 남기는 일에 대하여 쓰고 싶어졌다. 나와 더 가까워지려는 다른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무감하거나 장소는 나를 구성하고, 나는 그 유인에 넘어간다. 유명이거나 무명이거나 둘 중 하나인 지역들에서 남긴 발도장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나에 대해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한 움큼 생길 것만 같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 도시는 나를 어떻게 만들었던 걸까. 지금은 어떻게 변했고 여전한 것들이 남아는 있을까. 첫 글을 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발견할 질문이 더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적당한 답변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길 수도. 그 심연에는 나도 모르는 나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담겨 있기도 한 것이다.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테두리는 뚜렷한 시간들. 과거를 꺼내보며 자아 탐색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이번에도 여행을 해보려 한다. 지금 내 일상은 재미없으니까 언젠가 떠날 여행 계획을 세우는 심정이랄까. 이번 여행에서 오래전에 만났지만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나길 바란다. 안부 인사를 잘 받아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울 것 같다. 아니다... 인사 없이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괜찮겠다. 어차피 우리는 이미 한 번 만난 인연이니까.


사귀었다 이별한 연인과 찍은 사진을 다시 쳐다보다가 과거의 나와 마주하면, 그 사진을 보면서 드러낼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발자국을 옷처럼 입은 땅 덩어리들,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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