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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16. 2019

[다낭소리] 문제 없어요1

 문제 없어요1

  “문제 없어요!”

 타오 씨는 수업이 끝나면 꼭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는데, 먼 거리라 내가 거절하거나 미안해하면 단호하게 “괜찮아요! 문제없어요!”하곤 했다.


 타오 씨를 처음 만난 건 세종학당 한국어 말하기 특강 때였다. 수업 후 나를 찾아와 사례할 테니 개인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느냐 물었다. 나는 봉사단원이기 때문에 돈은 받지 않을 것이지만 요새 너무 바빠 안 되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주당 13시간 수업에 한국어 동아리만 해도 다섯 개를 겸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참 진행 중인 협력 활동, 막 시작하려던 협력활동까지 겹쳐서 다른 곳에 할애할 기운이 없었다. 세종학당 강의도 원어민 강사가 필요하다는 학교 선생님들의 부탁에 부담되는 걸 참으며 겨우 해나가고 있는 거였다. 


 만약 시간이 있다면 다낭외대 학생들을 위해 쓰고 싶었고 일련의 경험을 통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한국어에 관심 있는 척 다가왔다가 다른 의도를 보이거나 무심히 연락이 끊긴 사람들을 만나며 더 이상 오지랖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뒤였다. 내 거절에도 타오 씨는 다시 부탁해 왔다. 시간이며 장소며 나 편한 대로 맞출 테니 짧게라도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취업 준비 중이라는 말에 너무 간절해 보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초급반 교재는 다 뗐는데 늘 베트남 선생님들께 배우다 보니 회화 실력이 부족해서 과외를 요청했다는 타오 씨. 교재도 미리 구입하고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올 만큼 열정적이었다. 한국어도 곧잘 하지만 영어 실력이 유창해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이는 나와 같았지만 벌써 네 살짜리 딸도 키우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오토바이 택시를 부르려고 주섬주섬 헬멧을 챙기는데 타오 씨가 날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마침 타오 씨 집을 가려면 우리 집을 거쳐야 해서 부담 없이 받아 들였다. 베트남은 웬만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이럴 때 참 편리하다. 그런데 타오 씨가 날 데려간 곳은 길가에 세워 놓은 승용차 앞이었다. 어마마 세상에! 이 여자 차도 있었어?!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타오 씨는 부유한 친정과 사업을 하는 남편 덕에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성격 급한 나를 자책했다. 내가 일대일로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하면 신청할 학생들이 몇 십 명은 될 텐데, 그 애들을 두고 내가 이렇게 가진 자의 배를 불려도 되는 건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거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고 그마저도 사정이 생기면 쉬거나 미룰 수 있으니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열정 있는 학습자의 모습에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타오 씨와의 만남은 내가 다낭을 떠나기 전까지, 근 1년 동안 지속되었다. 차가 있어서 이동하기도 편했고 타오 씨 덕에 다낭 구석구석에 자리한 예쁜 카페에도 가 보았다. 생각이 열린 타오 씨 덕에 마음의 부담 없이 베트남과 한국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또래의 베트남 친구가 생겨서 좋았다. 


 귀국을 앞두고 타오 씨 부부가 준비한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은근 긴장하고 나간 자리였는데 다행히 타오 씨 남편이 내게 이런저런 걸 물어 보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끌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외국인을 많이 만나 보아서 그런지 내가 당황하지 않을 법한 질문을 하고 예의 있게 반응해 주는 것이 반가웠다. 매너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정갈하게 차려진 베트남 가정식을 먹으며 꽤나 오랜 시간 대화했다. 그러다 베트남에 오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이 들어왔다. 코이카를 소개하고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베트남에는 한국어 교육 단원이 많다고 얘기했다. 옆에서 타오 씨가 내가 월급 없이 일한다고 덧붙였다. 타오 씨 남편이 걱정스런 눈빛을 하며 그럼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물었다. 월급이 없는 대신 정부로부터 주거비와 생활비를 제공 받아 괜찮다고 하니 내게 베트남을 위해 힘써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한국의 봉사단 파견 프로그램을 칭찬했다. 그 말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대뜸 ‘생활비 얼마 받아요?’하고 물어 오는 사람은 만나 봤어도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못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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