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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코치 Sep 04. 2019

이별의 언어

지금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남길까?


# 1.

내게는 여동생이 셋이 있다. 원래는 넷이었다. 간발의 차로 동생이 된 막내의 바로 위 언니는 태어난 지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동생과 달리 허약했고 젖을 잘 먹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손수 그의 눈을 감겨주며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아빠 왜 그래?" "현정이가... 죽었어..." 나와 두 여동생은 처음 접하는 가족의 죽음이 당혹스러웠다. 마치 우리 형제들이 좀 더 잘해주지 않아서 떠난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일터에서 서둘러 돌아온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통곡하셨다. 그날 밤 단칸방 아랫목엔 숨을 거둔 어린 동생이 잠들어 있었고, 새끼를 잃은 가슴에 뭍은 어미의 깊은 흐느낌을 위로하듯 침침한 형광등만이 이따금 껌벅거렸다.


#2.

아버지는 몇 해 전 갑작스럽게 떠나셨다. 평온하고 맑은 가을날이었다. 가족들과 조반을 드시고 커피도 한 잔 하셨다. 거실에서 TV를 보다 불현듯 곁에 있던 어머니에게 몸을 기울이듯 쓰러지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두 번의 암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냈다. 심장과 관련해서는 병력이나 이상 징후는 한 번도 없었기에 급성심정지라는 사인이 좀 의외였다. 급작스럽긴 했지만 병치레하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가셨다. 심지어 큰아버지는 '나도 동생처럼 가야 할 텐데..'라며 아버지의 가시는 모습을 부러워하셨다.


#3.

아버지가 떠나신 후 언젠가 어머니가 떠날 날을 생각했다. 몇 번쯤 어머니의 임종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잠든 어머니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어머니는 이번 생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기로 맹세라도 하고 온 것 같았다.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나 가장으로서는 점수를 많이 받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싶어서 시작한 식당일이 어머니의 평생직업이 되었다. 젊어서 개업한 식당이 잘되기도 했지만 한두 번 기울어지면서 조리사로 취직을 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게 퇴근했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나는 아버지 생전에 몇 가지 추억을 함께 남기고 싶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면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했던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간을 내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도 보고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전주 한옥마을에 모시고 놀러 가기도 했었다. 기력이 예전만 못해서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무척 즐거워하셨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아버지를 보내드릴 때 마음이 편안했다. 아버지는 주어진 명을 다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49제도 지내지 않았다. 망자를 애도하기 위해 제를 지낸다지만 남은 자들의 상실을 치유하려는 목적이 크다. 마음에 불편함이 없으면 반드시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버지와는 나름대로 이별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도 살아계실 때 차근차근 이별 준비를 하려고 하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자신은 없다. 엄마와의 이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다. 잠든 엄마 앞에 선 나는 어미와 떨어져 우리에 갇힌 한 마리 새끼가 된다. 삶의 빛을 잃어버린 채 깊은 동굴에 버려진 당혹감에 떨며 온몸은 마비된다. 나의 모든 언어는 생각 너머로 사라지고 그저 흐르는 눈물만으로 보내드리고 만다.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들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점에 대한 후회가 인상 깊었다. 죽음도 이별도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언젠가 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당혹스러워하며 설익은 애도를 주섬주섬 늘어놓게 된다. 한순간도 이별과 같은 불온한 생각은 전혀 예상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것은 당연한 사회 통념적 행동양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나는 후회 가득한 눈물의 독백을 잠든 어머니 앞에서 늘어놓고 싶지 않다. 살아계실 때,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고 회상하며 숨겨진 생각의 퍼즐들을 맞추고 싶다. 말하지 못했던 감사, 후회, 미안함 등으로 미리 헤어짐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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