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방과 후에 대부분의 동년배 아이들은 부모님의 농사를 돕느라 바빴다. 우리 남매처럼 그냥 노는 아이들이 없어서 우린 그때부터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세 살 어린 동생은 나에게 의지했고 나는 동생에게 의지했다. 시절이 지금과 달랐던 옛날,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이었지만 걸어서 한 시간 거리도 외딴 숲 속도 우리가 마음먹고 나서면 어른들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뒷마당에서 제비꽃을 뽑고 두꺼비집을 만드는 게 지겨워져서 찻길을 건너 학교 뒷길을 가보기로 했다. 미지의 세계, 그곳엔 예상치 못하게도 엄마 아빠와 가본 적 있는 닭백숙 식당이 있었다. 그 식당 입구를 지나면 인공폭포와 돌을 깎아 만든 해태, 소나무 분재 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린아이에겐 신비한 느낌의 공간이 나타났다. 대낮엔 손님도 없었고 아직 영업 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은 호수의 비단잉어들이 우릴 반겼다. 인기척도 없는 빈 마당을 구석구석 탐색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개소리가 들렸다. 동물을 좋아하던 동생이 가보자고 했다. 겁이 나면서도 호기심에 소리를 따라서 다시 마당을 나오자 아까는 없었던 개 한 마리가 마당의 자기 집 앞에서 으르렁대고 있었다. 당황함도 잠시, 이방인들에게 영역을 침범당한 개는 금세라도 덤벼들 기세로 낮은 자세를 취하며 공격 태세를 갖췄다. 개를 살피는데 목줄이 없었다. 아니 있긴 했는데 개를 안전하게 붙들어야 할 말뚝은 뽑혀서 목줄 끝에 달려있을 뿐이었다. 순간 엄마가 생각났다.
"뛰어!" 나는 둘 다 살기 위해서 본능에 의해 잡고 있던 동생 손을 놓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우린 말 그대로 죽자살자 달렸다. 개가 쫓아왔다. 소나무와 온갖 나무들이 일렬로 서있는 숲길을 한참 달렸다. 동생이 뒤쳐지는 것이 느껴져서 돌아보는데 다행히 저 멀리서 개가 멈춰 서서 짖기만 하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동생 얼굴에 대고 숨찬 목소리로 괜찮다고 달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내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까 놓쳤던 동생 손을 잡았다. 우린 같이 개를 돌아보면서 삼켰던 두려움을 컼컥대며 웃음으로 뱉어냈다. 진짜로 개에 물려 죽을뻔한 일인데도 어린 동생이 나를 따라나섰던 것이 애틋해선지 지금도 생각하면 애잔하고 재밌는 일로 기억된다.
그렇게 누나 뒤만 졸졸 따르던 동생도 초등학생이 되자 교문 앞에서 잡았던 손을 쏙 뺐다. 친구들이 볼까 봐서였다. 그 작은 손에 힘을 줘서 쏙 빼던 순간이 왜 이렇게 기억이 나는지, 동생이 커가고 키는 나보다 한 뼘 넘게 더 자랄 때까지도 서운함과 기특함 사이를 오가며 그 순간을 곱씹었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몸이 크는 생장과는 별개의 일인데도 늘 내가 먼저 자라고 있단 착각을 하게 한다. 어느새 내가 힘들거나 그렇지 않은 때도 누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동생이 되어서 결혼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서있다. 개에 쫓길 때 내가 잡아준 손은 나를 잡아준 손이기도 했다. 같이 이쑤시개 통에 벌을 잡고 동생에게 이름 모를 꽃을 따서 먹이다가 엄마한테 혼이 나고 (그 외에도 생체실험에 가까운 몇몇 일들은 나만 기억하기로 한다) 같이 그림 그리던 유년기의 추억이 내겐 하나같이 소중하다. 동생은 나보다 어렸지만 명석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했다. 내가 하자는 건 뭐든 하면서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다. 그는 항상 냇가에서 막 건진 작은 차돌같이 반짝였다. 부모님이 내 손에 놓아준 나보다 더 작은 사람이 내겐 더없이 소중했다. 동생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낯선 어린 나이에 두려움 대신 설렘을 배우게 해 준 나의 첫 번째 스승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부모님 외에 처음 맺은 인간관계이면서 세상에 나서기 전에 이미 서로를 비교와 경쟁에 밀어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이기기만 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존재이다. 내가 애써 만든 두꺼비집을 무너뜨렸을 때 괜찮다고 해준 사람이다. 설령 자기가 그랬을 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