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이야기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코요테가 보기보다 얼마나 공격적인 동물인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편은 미국 골프장에서 코요테가 어린아이들을 공격하려 어슬렁거렸다는 이야기와 미국 유명한 배우가 산책하다 코요테 습격을 당한 이야기까지 했다. 동물에 관심이 많은 여섯 살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중했다. 네 살짜리 딸은 안 듣는 척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아빠가 코요테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이렇게..."라고 말하자 옆에 있는 두 돌 안된 동생이 코요테 인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빠 품에 안긴다. "무터워" 그러다 내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코요테가 있어. "워워워 워워워~ 어느 날 갑자기 슬픈 내게로 다가와~" 나는 반응을 살피며 일어나서 둥글게 둥글게 춤까지 추며 불렀다. 코요테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아들과 겁에 질린 딸은 일순간 표정이 녹으며 깔깔대며 웃는다.
"사랑만 남기고 멀리 떠나가 버린 너~" 여기까지 부르고 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들의 첫사랑, 다섯 살이었던 작년 한 해 동안 단짝으로 지낸 내은이다. 아들은 어린이집을 또래보다 조금 늦은 편인 만 4세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감성적인 아이라서 단체생활에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턴가 선생님이 보내오는 키즈노트에 항상 아들 옆에 새초롬해보이는 여자아이가 있고 사진 속 아들 얼굴이 밝아 보였다. 이후 일 년 넘게 거의 대부분의 사진에 둘이 붙어있었다. (내은이의 부모님이 신경 쓰일 정도로..) 그리고 제이는 어린이집에 안 간다 소리 대신 오늘은 내은이랑 이렇게 놀았다 이런 말을 했다 이야길 했다.
12월에 내은이 생일이 다가오길래 무슨 선물을 할지 물어보자 내은이는 핑크색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알려줬다. 핑크색 스팽글이 화려한 고양이 머리띠를 골라놓고 보여주니 좋아할 것 같아,라고 웃었다. 내은이는 지난달에 이사 가면서 새 학기엔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남편과 아들을 번갈아보며 이 노래는 제이가 내은 이에게 부를 법한 노래인데, 하자 아들이 달려들며 내 입을 막는다. 남편이 "제이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잊었을걸" 한다. 내가 대변인이 되어 말했다. "아냐, 지난번에 편의점 앞에 사탕 파는 거 보고 왜 이렇게 예쁜 게 많냐길래 화이트데이여서 좋아하는 여자한테 선물하는 거라고 알려줬거든, 제이가 자기는 내은이 이사 가서 못준다고 했다고. 그렇지?" 그렇지만 말해놓고 돌아보니 아들 표정이 웃고는 있지만 왜 말했어하는 듯 보였다.
괜히 놀렸나 싶은 마음에 아들을 데리고 다른 가족들 못 듣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팔베개하고 누워서 물어봤다."내은이 안 보고 싶어?"
"어, 밥 먹을 때도 생각했어." 아들은 웃지도 않고 짙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이어 말했다. "오늘도 내은이 엄청 생각 많이 났어." 그 말을 들으니 그동안 아들이 혼자 어린이집을 오가며 얼마나 마음이 쓰렸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컹했다. 그것도 모르는 어미는 놀려대기나 했으니... 원. 내은이 가 이사 가서 어떡하냐고 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별 말이 없었는데 그땐 이사 가는 게 어떤 뜻인지 몰랐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나도 내은이가 안 오고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긴 해도 내은이와의 예전 같은 케미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과장하는 걸 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이 보내오는 사진에서 더 이상 예전의 그 편안하고 짓궂은 표정의 제이 얼굴이 없었다.
나도 모르는 긴장을 풀어지게 하고 자주 웃게 하는 사람. 아들은 어느새 생애 첫 이성친구를 경험했던 것 같다. 아들에게 들으니 내은이가 특별히 더 상냥한 건 아니지만 아들처럼 섬세하고 차분하며 개그 코드가 잘 맞아서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많은 친구들 가운데서 서로 맞는 친구를 찾아 어울린 것도 멋지고 내 멋대로 하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관계를 형성해낸 아이들이 대견했다.
둘째가 좋아하는 추피 생활동화책에 추피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편이 있다. 한창 읽다가 추피와 여자 친구랑 나란히 앉은 장면이 나오자 딸이 그런다. "오빠랑 내은이 언니다 그렇지?" 여자애라 그런지 눈치가 빠삭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아들이 어디 있나 살폈다. 다행히 옆 방에서 혼자 로봇을 데리고 역할극을 하느라 피융피융치익익 난리도 아니다. 나는 딸이 알아듣게 천천히 속삭이며 말했다. "오빠 내은이 언니 이사 가서 이제 못 보거든, 그럼 속상하겠지? 오빠 앞에서 당분간 내은이 언니 이야기하지 말자, 알았지?" 딸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글이 공개되어도 좋을지, 아들 편에서 생각하니 고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