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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쟁 Apr 21. 2022

노래방 헤이러

금영과 함께 사는 일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방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따라가서 '친구 역할'로 재밌게 놀다 오긴 하겠지만 내가 나서서 갈 일은 없는 곳이다. 좋아하지 않는 장소 원탑이다. 가까이 있는데도 마이크를 써서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의 울리는 소리는 고통이다. 갇혀있는 것도 싫은데 어둡고 환기가 되지 않아 답답한 것은 한여름에 솜이불 둘러쓰고 군고구마를 까먹는 심정과 비슷하다. 차례를 돌아서 나한테 오는 의무적인 마이크 행차도 싫다. 그냥 듣기만 해도 된다면 따라가겠지만 굳이 노래방에서 불러야겠나 싶은 생각은 여전할 것이다. 노래방은 아무리 잘 꾸며도 노래방 기계의 존재 자체와 단가를 맞추느라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조명 때문에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어진 곳이다. 나는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세련된 사람과 같이 가서 허벅지에 탬버린을 치며 그의 노래를, 인생을 응원하는 것이 싫다. 잠시 노래가 쉬어지는 틈에 들려오는 옆방의 고성방가도 어이없어 헛웃음이 난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노래라도 불러가며 마음을 쉬게 하려는 이곳은 유흥업소라기보단 병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똑똑 떨어지는 링거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린다. 노래방. 나이가 들면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려 그런지 이젠 노래방 가자는 친구가 없어 다행이다.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회사 생활이라도 했더라면 회식하고 가는 노래방 때문에 사직서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웃긴 건 같이 사는 남자는 노래방 마니아였다는 사실이다. 나랑 연애하기 몇 해 전에 노래방을 끊었기(?) 때문에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가 있는 곳은 어디든 노래방이 되곤 한다. 가끔 대낮의 우리 집, 그리고 달리는 차 안은 거의 노래방 수준으로 시끌하다. 노래 앞 소절이나 전주 부분만 조금 흥얼거려도 전곡이 재생되는 그의 별명은 '금영'.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그의 음악 사랑은 올드 팝송, 2000년대, 8-90년대 가요를 거의 대부분 섭렵했고 이제는 스테이지를 노래방에서 교회 찬양단으로 바꿨다. 40여 년 모태신앙인이자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100곡의 찬송가 메들리가 가능하다. 그의 진지한 취미 생활을 인정하는 바, 데시벨 조절만 잘하고 슬픈 노래만 아니면 노래하게 냅. 둔. 다. 그는 내게 가사와 음률이 아름다운 가요도 알려주었고 덕분에 전곡을 다 부를 수 있는 내 나름 18번 가요도 생겼다. 노래방을 몇 번 안 가봤고 이젠 갈 일도 없음에도 여전히 노래방 싫다고 하는 이유는 나도 이제 노래방을 떠나서도 노래를 즐길 수 있는 입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드름 피우느라 노래방이 싫다고, 말해보는 거다.


 사랑이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싫은채로 둘수 없게 만드는것같다. ''Mr.금영'과 더 살다보면 우리집 한켠에는 어느덧 우리만의 18번들이 빼곡한 노래방 책자가 한권 놓이지 않을까. 




코로나로 어려운 자영업자, 특히 죽을힘을 다해 애쓴 노래방 사장님들 힘내세요. 다행히도 우리나라엔 저 같은 사람보단 노래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출처] 노래방 헤이러|작성자 생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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