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각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법.
그래서……,
그 이유가 얼마나 거창한지, 얼마나 왜소한지는 모르겠으나,
함부로 건들 수 없는 법
이게
나름의 법칙이다.
‘나름’이란, 하기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자기 입장에서 ‘00이 좋더라. **는 별로더라.’ 라고 말하며 동조해주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자기 중심적인 소통법이다.
싸움을 싫어하고, 누군가에게 눈치를 받는걸 꺼려 했던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곧잘 한다.
“맞아요.”, “그렇지.”, “응, 맞아. 맞아.”
하면서 간신배들처럼 이쪽으로 붙었다, 저쪽으로 붙었다 할 때가 있었다.
난 두 아들을 낳았다. 임신했을 때, 사실 난 딸을 낳고 싶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혜정이는 딸 놓을 것 같다. 꼼꼼하니, 얼마나 예쁘게 해서 키울까?’, 이 소리를 어찌나 하던지. 그래서 그랬는지, 나는 당연히 내 뱃속의 아이가 딸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둘째일 때는 더욱 그렇게 바랐다. 나의 감성을 함께 해 줄 동성의 가족, 생각만 해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난 아들 둘을 낳았고, 애써서 키우고 있는 중이며, 그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 3자들이다. 나는 괜찮은데, 아니 너무 좋은데, 왜 날 불쌍하게 보는 거지?
“지금이라도 셋째 낳아. 딸일지도 모르잖아.”
‘그럼, 키워주실 건가요?’
“어이구. 그래서 저렇게 말랐구나.”
‘원래, 체질상 그런 거예요. 우리 아드님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마른 것이구요.’
결론을 말하자면, 난 아들 둘 참 괜찮다. 딸 없어서 큰일 난 듯 불쌍한 듯 보는 사람들……, 그들이 나의 입장은 당신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딸도 딸 나름, 아들도 아들 나름, 그냥 잘 키우면 되는 거다.
사람, 물건 모두 그 자체가 가진 고유의 것이 있다. 뭐든지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그 고유한 영역을 ‘나름’이라 하며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법이다.
나는 ‘나름의 법칙’에 대해 생각해 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고유 영역을 넘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 발견해서 키워주는 것보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안되는 걸음으로 쫓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고, 나는 내 나름으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각자의 나름대로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나름의 법칙’,
다양성과 자존감이 존중되어야 하는 요즘의 교육상황에서 절실히 필요한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