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일기]결핍 에너지

by 웃는샘 이혜정


거북:토끼야, 네가 왜 나에게 졌는지 아니?


토끼:그야 뭐, 내가 잠깐 방심한 사이에 네가 치고 들어온 것뿐,

어쩌다 1등 갖고 진짜 1등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웃기지 마.

난 태어날 때부터 1등이었다고.


거북:너는 네가 가진 것에 으스대거나,

네가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지?

나는 부족한 나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써.

그렇기 때문에 넌 늘 제자리거나 내려올 테지만,

나에겐 오를 일만 남았다고.

난 너에게 없는 결핍에너지가 있어.

그러니까......


토끼: 그래서...... 뭐? 어쩌라고?


거북: 조심해라고. 더는 까불지 말고.




요즘 아이들은 예전 우리 때보다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 보아도, 내가 신규교사로 발령 난 14년 전쯤과 비교해 보아도, 확실히 아이들의 환경은 풍요로워졌다. 뭐든지 다 갖춰져 있고, 조금이라도 힘든 뭔가를 하려고 하질 않는다. 물론 달라진 교육환경이 그 원인일 수 있다. 경쟁을 바라지 않는 교육 말이다. 예전에는 월별 교내 대회, 매년 치러지는 시대회, 도대회, 전국대회가 있었고, 거기에 나가 아이들의 성과를 내는 것이 교사의 큰일 중 하나였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신규 시절 과학대회 미술분야를 맡았었다. 아이를 밤 10시까지 남겨가며 캄캄한 학교에서 단 몇 개의 교실만 불을 밝힌 채 몇 날 며칠 애써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학부모는 감사한 마음에 저녁거리와 간식도 가지고 왔었다. 과학 토론대회를 준비할 때는 거의 두 달 동안 과학실을 빌려서 실험과, 발표를 준비했었다. 그것이 교사 된 자로서의 보람이었고, 그런 과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비경쟁의 인권중심 교육이 들어왔고, 배움중심수업, 자기주도적 학습 등이 강조되면서 많은 대회가 발표회 정도로 축소되었고, 그런 대회가 있다 한들, 그 성과를 보고 나가라는 학교장이나, 나가려는 교사나, 나가고 싶어 하는 학생도 이젠 없다.

늘 문학 공모제를 살펴보는 습관이 있는지라, 어디 시 쓰기 대회가 있길래, 학교 학생들에게 안내를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성취 거리를 주고 싶었다. 밋밋한 생활 속에서 엄마가 시킨 문제집을 풀고, 학원을 다녀오고……. 사실 그들에게 새로운 자극 거리도 주고 싶었고, 같이 생각을 나누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대회’라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저도 나가볼래요. 시 써오면 되나요?”

다들 무슨 자신감인지, 그냥 써 오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시에 대해서 가르쳐 줄게. 생각을 나타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선생님, 저 일기장에 시 많이 써봤어요. 그거 그냥 낼래요.”

시대회에 나가볼 아이들에게 월요일 30분만 내달라고 하니, 싫단다. 놀아야 한다고. 그런데, 시대회에 나갈 거라고 종이는 다 받아 갔다.

‘맞아. 시 쓰는 게 무슨 방법이 있겠어? 자기 마음만 잘 나타내면 되겠지.’

그냥 서운한 마음에 이렇게 합리화시키며 그다음 주를 기다렸다. 그다음 주가 끝날 때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이 시를 제출하지 않았고, 난 담임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급하게 적은 티가 다 났다. 아이들은 시를 그냥 ‘짧은 글’쯤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국어시간 몇 시간을 들여 시를 썼기에, 집 두 아드님은 며칠째 공들여 쓰고 있었기에, 이 시들이 얼마나 정성이 부족한지 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시를 물끄러미 읽고 있으니, 우리 반 아이가 말한다.

“왜요? 선생님? ”

“아니, 그냥 읽어보는 거야.”

“그 언니, 아까 일기장 보고 베껴 적고 있던데요. 급하게.”

나는 아이들에게 뭘 원했을까? 정성? 노력? 절실함?

난 내 아들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원해? 이거 하기를 원해? 그럼 네가 절실해야 해. 엄마도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절실해지더라. 그런데, 중요한 건 절실해도 안 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절실하지 않다면 뭘 하더라도 잘 안돼.”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서 요즘의 많은 아이들이 절실하지 않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문제는 나에게도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원하는 걸 다 해주려고 하면 남편은 늘 그렇게 하지 말란다.

김치도 큰 거 그냥 주고, 생선 가시도 발라주지 말고, 뭔가를 못 해도 보고, 잃어도 보고, 없어도 보고 해야 그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고, 그 속에서 해결 방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그런데 난 그러기 싫어서 귀를 닫아버렸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었다. 숙제도 거의 내가 하다시피 마무리해주었고, 준비물도 내가 챙겨 가방 안에 고이 넣어주었다. 글쓰기 대회가 있으면 애가 적은 글을 다 헤집어 고쳐놓았고, 아이 그림에 손을 대어 완벽함을 추구했었다.


뭔가 결핍되어 있으면 그 속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결핍되어 있는 것은 뭔가로 채워지려고 하기 때문에 노력과 절실함을 만들어 낸다고. 그래서 다 갖춘 사람은 발전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없는 사람은 없는 걸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리드해서 결핍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갑자기, 불안해진다.


정말 그런 거라면,

난 지금 우리 아이들의 에너지를 뺏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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