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왜 얘가 이쪽으로 자라지요? 이상하네.
손님이 그렇게 키운 거예요.
제가요? 언제요?
저는 분명 똑같은 씨앗을 드렸어요.
키우는 건 당신들 몫.
잘 키울지, 못 키울지.
어떻게 키울지는
당신들 하기에 달려있어요.
뭐, 얘가 아직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에요.
당신이 키우는 대로 자랄 뿐.
그러니 괜히 이 아이 탓하지 마쇼.
산후 조리원에서 베드 위에 누워 있는 아기들을 보면 참 비슷하다.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자고……. 생긴 것도 비슷하고, 하는 행동도 모두 같다.
점점 이 아기들은 부모의 손 안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색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부모의 육아관, 키우는 태도, 우선순위 등에 따라 아이들은 다르게 성장한다. 당연한 거겠지만, 많은 부모들은 이런 사실에 깊이 겁을 내야 할 것이다. 자신이 키운 대로 아이들이 자란다고 했을 때, 그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할까?
식습관을 일례로 보자. 어릴 때부터 안 먹어 본 음식은 자라면서 좋아하기 힘들다.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보면 채소 등에는 손을 대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의 가정식을 살펴보면 너겟, 돈까스, 김 등 죄다 구워 먹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한 아이가 늘 국을 그대로 남기길래, 물어보았다. 왜 안 먹냐고. 못 먹겠느냐고. 아이가 말하길, 집에서는 부모님께서 국을 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먹었을 때의 그 느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해산물을 싫어하는 부모가 요리를 한다고 해보자. 음식을 만들 때 당연히 해산물을 넣지 않을 것이다. 버섯을 좋아하지 않는 부모가 반찬 메뉴를 결정할 때 버섯은 당연히 제외될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서, 사회에 나가서도 그 음식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먹성이 좋은 아이들은 새로운 음식에도 거부감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평생 찡그린 눈으로 그 음식을 대할 것이다.
공부 습관도 마찬가지이다. 한 부모는 세계화 시대에 맞게 영어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유치원, 영어 홈스쿨 등으로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하게 했다. 그런데 나같이 영어교육에 무지한 부모는 ‘영어? 중요하지. 근데, 나중에 지가 필요하면 공부할거야. 영어는 그때 공부해도 될걸. 우릴 봐. 우리는 중학생 되어서야 알파벳 외웠잖아. 그래도 원어민이랑 잘만 얘기한다고.’라는 생각으로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돼서야 교육을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조금씩 말이다. 큰 아이 영어공부를 내가 봐주고 있었다. 원어민과의 소통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화상영어를 알아보았었다. 그때 주변에 한 선생님이 “웬만하면 미국인이나 영국인 선생님으로 하지?” 라며 조언을 해 주셨다. ‘아, 그렇구나.’ 싶어서 선생님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값이 곱절이나 되었다. 결국은 난 다정다감하신 필리핀 선생님을 선택했고, 지금까지(1년이 넘었다.) 꾸준히 즐겁게 하고 있다. 영어 공부에 우선순위를 두는 부모에게는 이렇게 아이의 영어 발음조차 중요했다. 반면에 나는 영어보다는 수학공부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수학을 좋아했던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에 한 문제라도, 그게 1시간이 걸리더라도 풀어보자!”하는 게 나의 교육 방법이다. 결국 영어공부를 더 접했던 아이는 당연히 영어를 더 잘할 것이고, 그게 아닌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저질 발음의 수학쟁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조용했다고 한다. 엄마 말씀으로는 “밖에 좀 나가 놀아라.”해도 난 엄마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댔다고 했다. 겁도 많아 어디 멀리 혼자 가질 못했다. 한 번씩 신랑이랑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난 기겁을 한다. 혼자 산을 넘고, 도랑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자유분방하게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는 신랑의 이야기에 부럽기도 하고, ‘난 다시 돌아가도 못 할 텐데.’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난 그런 경험이 없기에, 그런 성격도 못되기에, 아직도 못하는 것이다. 물가에 가서도 물놀이는커녕 앉아있기만 하고, 스키장에 가도 나를 제외한 세 명의 남자들만 즐긴다. 물론, 내가 못 즐긴다는 게 아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내가 정말로 즐기는 일이니까. 하지만 난 늘 이런 생각은 한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컸을 때, 나처럼 못 노는 어른은 되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다양하게 놀아주는 신랑이 고마웠고, 엄마와 다르게 이것저것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부모가 아이의 타고난 성향까지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의 타고난 인성뿐만 아니라 잘하고 못하는 것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내 아이들을 키우며 이걸 증명했다. 첫째 아이랑 둘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첫째 아이는 잘 잤고, 잘 웃었고, 잘 먹고, 말도 잘 들었다. ‘어쩜 이렇게 예쁠 수 있지?’라는 생각에 나는 둘째를 일찍 계획했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난 순간 나의 그 거창한 기대는 무너져 버렸다. 울기만 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목소리도 커서 밤마다 우는 아이의 입을 막기도 했다. 너무 화가 났다. 아이를 보며 ‘너는 어디에서 왔니?’라고 울부짖었다. 짜증과 미움으로 더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나는 둘째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걷다 보니 길가에 큰 절이 있었다. 불교도, 기독교도 믿지 않았지만 휴직중인 나로서는 갈 곳도, 만나 줄 사람도 없었기에 그곳에 들어갔다. 넓직한 법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두웠고, 고유의 향내가 풍겼으며, 불상들이 혼내듯이 우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아기띠를 풀자, 아이는 이리 기고, 저리기고 신이 난 듯 보였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명상을 했다. 그냥 조용히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지도 않고, ‘뭘 해야지.’라는 생각도 없이. 정말 신기한 건 그리 잘 울던 아이가 그곳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다는 것이다. 나를 보채지도 않고, 칭얼대지도 않았다. 오래도록 날 기다려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모습을 보고, 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나 때문일지도.’
나는 그때 이후로, 아이가 너무 예뻤다. 미안하기도 했다. 아이가 나의 그 마음을 느꼈는지, 우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고, 잘 웃어주었다. 지금도 내 곁에서 늘 예쁘게 애교떨며 웃어주는 아이는 나의 둘째 아이, 우영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모든 게 다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키우는 대로 아이는 자라게 된다. 초기에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 나중에 바로잡기가 훨씬 힘들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야 되는 것이다.
부모 탓이라는 말보다, 부모 덕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