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잘하는 게 있나요?
B : 음……. 꼭 있어야 하나요?
제가요. 잘하는 건 없어도
이것저것 하는 건 참 많아요. 그럼 됐지 않아요?
A : 그럼 좋아하는 게 뭐죠?
B : 아! 좋아하는 거요? 그것도 너무 많아서 꼭 하나를 말씀드리기가 어려운걸요.
A : 됐어요. 그럼.
B : 왜요?
A : 돌아가서 좀 더 해보고, 더 좋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면 찾아오세요.
그때, 당신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여 줄게요.
신규교사로 발령나고, 2월 첫 부임 인사를 갔다. 떨리는 마음에 교장선생님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나이의 동기도 그 학교에 같이 발령났기에 함께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따뜻한 차를 주시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고향이 어딘지, 집은 구했는지 물어보시며 딸인 마냥 챙겨주셨고, 학교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며 우리가 많이 긴장하지 않도록 애써주셨다. 그리고 일어날 때쯤 되어서 이렇게 질문하셨다.
“이 선생님은 무얼 잘하시나?”
“배 선생님은 뭐 특기 같은 거 없나요?”
나와 내 동기는 전혀 예상 못한 질문에 답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셨는지 한 번 더 물어보셨다.
“아니, 운동이나 음악이나 미술이나 그런 거 말이야.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바로 그때 내 동기 선생님은,
“아, 그런 거요? 저는 태권도 4단이고요. 운동을 좀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지?’
‘내가 뭘 잘하지? 운동? 아닌데. 미술? 몰라. 음악? 별론데.’
‘나는 수학이랑 과학을 잘했는데, 경시대회에서도 맨날 상 받았는데. 근데 그걸 말씀하시는 건 아니잖아. 그냥 말해볼까?’
수많은 생각을 끝으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내 표정이 너무 난처해 보였는지, 교장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애들 가르치면서 하나씩 해보고 찾아 나가면 돼요.”라고 하시고는,
내 동기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허허. 이제 우리 학교 아이들 체조나 태권도는 배선생님에게 맡기면 되겠네.”
나는 그날 저녁 자취방에 덩그러니 앉아 울었다. 아무도 몰래. 아무도 나에게 나쁘게 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그날 그렇게 슬펐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난 그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 데에 대해 크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난 살면서 어딜 가든, 뭘 하든 보통 이상은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미술시간, ‘상’ 점수를 받을 만큼은 했고, 피아노도 어릴 때 잠깐 학원을 다녔기에 쉬운 악보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운동? 체력도, 운동신경도 없지만 체육 실기시간에는 어떻게든 노력해서 ‘상’ 점수는 받았던 것 같다. 그냥 공부만 잘하면 됐었다. 하지만 난 남들에 비해서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더 슬픈 것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조차 몰랐다.
24살, 그 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까? 라는 생각에 그렇게 울음이 났던 것 같다. 창피해서 말이다.
2007년 2월, 그날 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다짐을 했다.
‘뭘 잘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난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울 때 늘 이 부분을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뭔가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14년간의 노력으로 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바로 내가 먼저 뭔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뭔가를 잘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부모를 보며 자란다. 무조건 아이에게,
“넌 뭘 잘하니?”, “넌 뭘 좋아하니?”, “넌 꿈이 뭐니?”
“꿈이 아직 없으면 어떡해?”, “잘하는 게 없어?”
“네 나이에 좋아하는 게 없다고? 왜 그리 의욕이 없어?”
라고 할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부모가, 어떤 일에 몰두하고, 그래서 뭔가를 잘하고 있으면 아이들도 덩달아 자신의 것을 찾아 간다.
“애들아, 이거 선생님이 어제 저녁에 그린 그림이야. 어때? 선생님은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애들아, 선생님 저번에 나갔던 대회 1등 했어. 힘들 때는 좀 포기하고 싶었는데, 지금 너무 행복해. 선생님 칭찬해 줄래?”
“애들아, 선생님 이제 글 적어. 동화책을 만들 거야. 너희들 이름으로 주인공 만들어도 돼? 완성되면 꼭 들려줄게. 요즘 너무 이것 때문에 설레여.”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들, 잘하는 일들을 공공연하게 보여주면,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그 시간 자신의 것들을 찾아온다.
“선생님, 저도 어제 그림을 그려봤어요. 어때요?”
“선생님, 저도 동화책 적어본 적 있어요. 너무 재밌던걸요.”
“선생님, 다음 연극대회에는 저도 꼭 할래요. 하고 싶어 졌어요.”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면 아이들은 해야 할 일들 외에 자신이 좋아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머뭇거리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집에서 아이들은 완전 엄마 판박이다.
“엄마, 오늘도 엄마 시간이 필요해요? 그럼 나 할 거 빨리 끝낼 테니까, 같이해요.”
“넌 오늘 뭐 할 거야? 엄만 오늘 음악 틀어놓고 그림 스케치 해놓은 거 색칠할 건데.”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페빌 하던 거 완성할 거예요.”
“형아, 나도 같이 할래.”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들, 잘하는 것들이 넘쳐난다.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래서 그 일을 잘하고, 결국엔 즐기며 사는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아침에 일하러 나가기 싫다 하고, 퇴근해서도 그 다음 날을 걱정하며 짜증을 내는 어른들을 아이들이 본다면, 그 아이는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을까? 좀 편한 직장, 돈 많이 버는 직장, 괜찮은 상사를 만날 수 있는 직장 등을 자신의 장래희망으로 두지 않을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즐겁게 일을 하거나, 아니, 일은 즐겁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어 틈틈이 즐기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결국은 자신의 삶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며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뭔가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로 크길 바란다면, 우리부터 그렇게 살자.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를 알아가기 위해 이렇게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