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시절이 찬란한 순간이 되기까지
반겨주는건 강아지 뿐이다.
눈이 마주치자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짧고 통통한 발을 마구 구르는 나의 인간 강아지.
요즘 돌보고 있는 두 돌 아기 이야기다.
이제 막 말을 떼고 걷기 시작했으니 제일 예쁠 때다.
집에오면 손을 씻기고 간식을 주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준다.
앞으로 2시간 반, 맨정신으로? 놀아주려면 정신 단디 차려야 한다.
책을 읽어주고 그림을 그리고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며 잡기놀이를 한다.
땀이 난다. 이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도 갔을 것이다.
아이는 끝없이 저지레를 일삼는다.
요즘은 편백나무에 꽂혔다.
작은 나무조각들을 온몸에 뿌리다가 집안 여기저기 던져대며 깔깔댄다.
보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가끔은 뭐가 맘에 안드는지 성을 내고 울었다.
물건을 던지고 주워오라 명령하고
기저귀를 갈때면 이방저방 도망다니며 소변을 지렸다.
그러다 자기 엄마가 퇴근을 하면 내가 데리러 왔을 때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한다.
"우리아기, 너무 보고싶었어"
엄마의 인사에 아기가 목을 당겨 끌어 안는다.
..나도 저랬었나? 기억을 더듬어본다.
음.. 없다..없어.. 없는데..
나에게는 저런 기억이 없다.
하루종일 일에 찌든 엄마가 아이를 보면서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적이라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때마침 잘 정리해놓은 편백나무 봉지가 또다시 거꾸로 쏟아진다.
아이엄마가 편백나무 조각을 아이 몸에 뿌리며 같이 웃는다.
내가 치우려 하자 어차피 또 어질러진다며 그냥 놔두라 한다.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더 행복해하는 아이엄마를 보니
나의 의심이 졸렬하게 느껴졌다.
깜깜한 기억에 스위치를 켠다.
30대의 나는 왠지모르게 늘 화가 나 있다.
육아가 내게서 젊음을 빼앗고 자존감을 갉아먹고
커리어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육아를 지병처럼 앓았다.
그와중에도 남들처럼 살아보겠노라
남은 힘을 쥐어짜 열심히 노를 저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엉뚱한 사람들과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말라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이들은 눈치를 많이 봤다.
실수를 하면 혼이 날까 도전을 꺼렸다.
그럼 또 그게 보기 싫어 혼을 냈다.
불완전한 주제에 완벽해지려고 했다.
그래서 사실은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불안함에 쫓겨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는,
나는 너무나 부족한 엄마였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날마다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죽자고 쫓아다닐때가 엊그제같은데
이제는 사정사정해야 놀아주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상은의 노래가사가 비수에 꽂힌다.
생각해보면 낮에 일은 억까였다.
어쩌면 열등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울 앞에서 씨익 웃어본다.
"우리 아기 사랑해~"
안하던걸 하려니 입가에 경련이 난다.
아기엄마와 비교해보니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같다.
하지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
비록 우리아이들이 편백나무를 던지고 노는 아가는 아닐지라도
아직은.. 미성년자다.
그럼으로 나의 육아도 끝나지 않았다.
사랑으로 키워보자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런 나를 저만치서 아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웃자 아이들도 따라 웃는다.
힘들었던 시절은 찬란한 순간이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