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쪼매난 물음표 살인마

by 누피

눅진한 공기가 온몸에 기름때처럼 들러붙은 여름날이었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손부채질을 하는 나에게 서우가 물었다.


"이모, 지금은 여름이야?"

"응. 여름이지. 더우니까"

"여름엔 더워?"

"응, 더워죽겠어"

"그럼 가을은?"

"가을? 가을은 시원해 죽겠지"


'죽겠다'는 말에 꽂힌 서우가 도돌이표처럼 4계절의 날씨를 묻고 또 물었다. 겨울은 추워 죽겠고 봄은 따뜻해 죽겠고 여름은 더워죽겠고 시원한 가을, 추운 겨울이 지나면 또다시 봄이 오는..


언어재능이 남다른 아이였다.

종종 세 살배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단어들을 구사해 나를 놀라게 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듣다가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기억해 두고 적재적소에 응용을 했다. 예를 들면 '나뭇잎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라는 말을 듣고 '여기저기' 를 되새김질한 뒤 거실에 블록이 어지럽혀진 모습을 보고 '블록이 여기저기 있네!'라고 말하는 식으로.


"우리 아기, 천재다 천재!"


나는 서우를 꼭 끌어안고 웃었다.

순하고 낯가림 없는 서우가 처음부터 좋았다.

남자아이지만 섬세한 감정선이 잘 맞았다.

한 가지 문제라면 똑똑한 서우를 담기에 내 그릇이 작다는 사실 뿐.


"이모가 깜빡했네, 미안해"

"왜 깜빡했는데?"

"실수야. 나이가 들면 자꾸 잊어버리거든"

"왜 나이가 드는데?"

"모든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나이가 들어"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어떻게 되는데?"

"하늘나라.. 가는 거지."

"이모도 하늘나라에 가?"

"..."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논하게 될줄이야.

세 살배기와 나누기엔 심오한 주제였다.

대답을 잘해야했다.

나는 머뭇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가. 사람뿐만 아니라 꽃이나 동물들도.

요즘은 100살까지 산다고들 하지만 우주에서 볼 때 100년은 엄청 짧은 시간이거든.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같이 하는 시간이 정말 소중한 거야."


서우가 일시정지 됐다.

쓴 맛나는 여름 무를 베어먹은 얼굴이었다.

그때, cd플레이어에서 자동재생된 '아기상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서우가 곧바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그렇게 질문은 끝이 났다.


가끔 생각한다.

서우의 우주에 나는 먼지같은 존재일 것이라고.

하지만 작은 서사가 쌓여 아이의 우주를 만든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돌본다.

아이의 우주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서우가 다시 물었다.


"여름은?"

"더워 죽겠어"

"가을은?"

"시원해 죽겠어"

"서우는?"

"이뻐 죽겠어!"


서우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