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내맘속의 어른이

by 누피

1.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머리에 실내화 주머니를 받히고 뛰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같이가~"


옆반 미희였다. 얼마 전부터 다닌 수학학원에서 같은반이 된 뒤로 친해진 친구였다.

미희의 옆에는 미희를 빼다박은 여자가 나를 내려다 보며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엉거주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 안녕, 미희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내꺼 써, 나는 엄마랑 같이 쓰면 되니까."


미희가 제 우산을 펼치더니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미희엄마가 손수건을 꺼내 직접 머리를 털어주었다. 손수건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사거리까지 함께 걸어가는 내내 미희는 쉬지않고 수다를 떨었다. 미희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하면서도 입꼬리만은 쉬이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기묘한 소외감에 휩싸였다. 분명 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우리엄마도 주부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았다. 그렇다면 미희엄마처럼 다정했을까? 삶의 무게로 짓눌린 엄마의 그늘진 얼굴이 미희엄마의 해사한 미소와 선명하게 대비돼 씁쓸했다. 팔짱을 꼭 낀 모녀가 점이 되어 사라질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빗물이 스며든 운동화에선 찌꺽찌꺽 소리가 났다. 노란장화를 신고 물웅덩이를 밟으며 까르르 웃던 미희에게 걷잡을 수 없는 맹렬한 질투가 샘솟았다.


2.

그날도 오늘처럼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교문앞에 북적이는 엄마들 사이에 끼어 오매불망 아이를 기다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에게 비오는날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는 일종의 판타지였다. 아이를 향해 새차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발견한 아이가 우산 속으로 후다닥 뛰쳐들어왔다.


"친구랑 같이 쓰고 가면 되는데 뭐하러 학교까지 왔어"

"왜~ 엄마오니까 좋잖아~"

"그렇긴한데.."


심드렁한 아이의 반응에 머슥해진 내가 곧장 화제를 돌렸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뭐 재밌는 일 없었어?"

"그냥.. 맨날 똑같지 뭐."


아이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채 영혼없이 대답했다. 침묵이 빗줄기와 함께 내리쳤다. 그토록 그리던 순간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날의 미희가 되지 못했다.



3.

된장찌개를 함께 먹으며 서로의 하루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족을 꿈꿨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묻지 않았다. 늘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 '믿으니까' 라는 말로 어린 나를 홀로 세웠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의연해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 때로는 이 정도면 힘든건지, 화가 나는게 맞는건지 조차 판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는 다정한 엄마가 되는 상상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는데 좋은 방법이었다.


결혼 후 바라던대로 아이둘을 직접 키웠지만 실전은 달랐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내게서 결핍을 느꼈다. 어느날은 학교에서 받아온 심리검사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적도 있었다. 불안감과 자존감이 위험경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인 지금은 한술 더 떠 누구 엄마는 의사라더라, 선생님이더라 하면서 최저시급 받는 엄마를 긁는다. 온마음과 시간을 갈아넣어도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는걸 육아를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보면 결핍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어쩌면 '결핍을 받았다' 는 것조차 개인의 선택일지 모른다.


인간은 결코 결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연없는 인생도 없다. 미희모녀에게도 내가 모르는 결핍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건 우리엄마도 미희엄마만큼 나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던 열네살의 나는 여전히 측은하다. 그래도 그 덕에 강한 독립심을 얻지 않았는가. 인생은 평면이 아닌 입체라는걸 깨닫게 되면 결핍은 삶의 동력이 된다.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며 이제 그만 그날의 한을 풀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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