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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Sep 08. 2022

무진장 작아진 잠시 집

풍경은 기가 막히게 좋아

나의 엄마, 아빠는 단 한 순간도 내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사과하고, 이유를 설명하고, 서로 다투고, 마침내 또 다른 안녕을 기원할 때까지도.


당연한 듯 서로 한 집에 살았지만, 부자연스럽지도 않게 서로 다른 집에 짐을 풀었다. 우리 모녀는 우선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세상을 잔뜩 경험한 엄마와 할머니, 그런 두 모녀는 경험한 세상 만큼이나 잔뜩 상처 나고야 말았다. 둘은 지쳤고, 어른의 싸움을 한껏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나와 내 동생 역시 지칠 대로 지쳤다. 할머니를 통해 엄마로서의 냉정이 당신의 딸, 당신의 손녀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도 실감했다. 나의 엄마가 우리에게는 이 냉정을 경험하게 하지 않으려고 지치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다정하려 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 만큼은 언제든 기댈 수 있게 해 주고 싶은 그 마음 하나로 나의 엄마는 당신의 마음이 다치는 와중에도 우리를 챙겼다.


할머니는 상처 받은 자신의 딸을 품어 주지 못했고, 점점 지쳐 가는 우리에게 이해해 달라고 더는 얘기할 수 없었던 엄마는 다른 집을 찾았다.


모두 안쓰러운 귀한 사람들이다. 할머니가 밉지 않다. 그저 할머니를 향한 내 마음이 굴곡 하나 없이 차분할 뿐이다. 그저 건강하시길.


아쉽게도 많은 일이 휘몰아친  순간은 내게 개강한  2주차 되는 시점이었다. 엄마가 내게 말했다. 예정아, 휴학하자. 지금 당장  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나였고, 지금 당장 엄마의 곁에는 내가 있어야 했다. 나는  의지를 잊은  학기 중에 휴학했다. 속상이 넘실거렸다. 나의 막학기가 이렇게 미뤄진다. 내가   계획이 미뤄진다. 왜 나한테, 왜 나는 등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생각에 멈춰 있기에는 나는 아직 젊고 그럼에도 시간은 흐른다. 이 순간 내가 한 선택이 모두 최선이고 옳다는 것을 되내이고 믿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집이 도통 잘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당장 구하려는 집은 오래 살 집이 아닌 단 몇 개월 정도만 거주할 집이었기에 위치와 보안만을 우선으로 고려했다.


사이트, 부동산 등을 통해 여러 번 살폈으나 집은 너무나 한정적이었고, 딱 하나의 집만 직접 보러 걸음을 옮겼다. 발코니가 있는 꼭대기 층 원룸 오피스텔. 처음 보러 갔을 때에는 너무나 좁게만 느껴졌고, 쓸데없이 넓은 발코니에 괜히 신경질이 났다.


선택지가 없었기에 엄마는 계약을 했고 이삿짐과 입주 청소를 빠르게 예약했다. 입주 청소는 매우 별로여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다행히 이사는 웃돈을 더 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다음 이사도 꼭 약속했다.


이사 전 새로운 집에 몇 번 더 방문했는데, 내 눈이 이상해진 걸까. 집이 그다지 좁아 보이지 않고, 발코니에서는 삼겹살까지 구워 먹기로 약속했다. 사람은 적응의 시야를 가져서인 걸까. 이 작은 공간이 내게 주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발코니 덕에 풍경까지 기가 막혔다. 밤이 되면 이 공간은 더 빛을 발한다. 좁디 좁은 이 공간이 말이다.


짐을 쌓아둔 모습


짐을 모두 집 안에 옮겼을 때에는 웃음이 나왔다. 새로운 집이 짐에 파묻혔다. 발코니가 없었으면 큰일일 뻔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자리한 짐. 조금씩이든 많이든 어찌되었든 제 자리를 찾아갈 짐이었고, 우리 세 모녀도 이제는 마음 편할 일만 남은 게 틀림없다.


우리 셋이 안쓰러웠던 걸까. 관리사무소 직원 분들까지 우리를 더 챙겨 주고 싶어 하셨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이리 처음부터 마음이 많이 가면, 그 만큼 작별의 시간도 꽤 이르게 찾아 온다. 잠시 머무는 곳인 만큼 빠르게 안정감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건 너무나 기쁘겠지만. 이 분들과 헤어질 때에는 그 나름대로 감사한 만큼 기쁘게 슬플 듯하다.


할머니 집을 벗어나니 공간은 좁아졌지만, 우리의 숨은 한껏 넓어졌다. 지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사람들도 보인다. 오래 기다릴 줄 알았던 택배도 하루만에 도착해서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더 잘 되기 위해 이 좁디 좁은 공간에 온 거야. 이곳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제 잘 될 일만 기다리면 돼.


잠시 잘 부탁해, 좁디 좁은 우리의 공간, 발코니가 있는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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