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서 가는 길입니다.

삐빅-. 지나친 조언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됩니다.

by 그냥예정


오랜만에 어느 지인 분을 뵈었다. 오래 알고 지냈던 분이지만 친하리라 만큼의 친분은 없었기 때문에, 만나면 인사와 안부만 묻고 지나가는 사이다. 이번에도 내게 안부를 물으셨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인, 진학한 학교와 학과에 대해 물으셨다. 국문과 갔어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왜 거기로 갔어? 가서 뭐하려고?



나름 나는 한글을 공부하는 국문과에 입학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분은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른다. 그렇기에 저런 말씀을 하셨겠지.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국문과 진학을 원했고, 라디오 작가를 꿈꿨다. 그분에게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가고 싶어서 갔어요.


그 다음 돌아오는 대답은, 글쓰기에 소질이 있나? 친분이 그리 많지도 않은 사람에게 내 작문력까지 설명해야 한다니. 읽는 사람에 따라 글의 우수성은 변화한다. 나 역시 내가 글을 잘 쓰는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쓸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나의 작문력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자 교육감상 수상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소질이 있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과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다시 생각해 보면서 괜히 우스웠다. 기분의 동요는 없었지만 알려드리고 싶었다. 내가 좋아서, 더 배우고 싶어서 진학한 곳임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었다. 내 작문력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상 기록이 있어서. 원래 나는 나를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그런 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닌 사람에게 나를 드러냈다. 어지간히 반박하고 싶었구나.



대화의 과정에서 청자와 발화자가 있으면, 나는 청자에 더 가까웠다. 말을 하더라도 발화자와 관련된 말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쯤에 한 친구가 이런 내게 물었다.



너는 왜 너 얘기를 안 해줘?



순간, 머리가 띵- 하는 기분이었다. 친구는 서운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친구에게 서운함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몰랐다. 그 뒤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나를 털어 놓고 있다. 그제야 알았다. 상대방과 내가 친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척도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 얘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안 좋게 말하면 나를 숨긴다. 이런 내가 그 분께 나를 드러낸 것을 보면, 나도 그때 어지간히도 기분이 나빴나 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나친 관심은 되려 해가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몇몇의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인냥 인생의 선배로서, 경험자로서, 라는 명분으로 연설을 털어 놓는다. 같은 고민을 경험했으면 내 고민에 있어서 경험자가 되겠지만 무작정 자신의 사상을 주입시키려는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조언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나가는 행인으로부터 들은 기억나지 않는 말에 불과하다. 필요하지 않은, 지나친 조언을 해 주는 그 행인은 전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은 커다란 단상 위에서 연설을 하는 것처럼 자신감에 차 말을 이어나가겠지만 그 연설을 듣는 사람은 자그마한 바늘 하나가 귀를 콕콕 찌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는, 이내 상처를 남긴다.





제가 좋아서 제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걱정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떼는 저를 위해 믿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UMZZICK_181010_184228.gif 사진=아이유 '삐삐' MV 캡쳐


삐빅-. 지나친 조언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됩니다.



늘 노력합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부디, 이 글을 읽은 그대도
힘을 내어 주세요.
그대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