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심전심]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by 교차로 노동자

생각해 보면 마음을 헤아리는 건 힘든 일이다.


'@@아, 드라이버 좀 줘봐'


몇 달 전 퇴사하게 된 나는 이것저것 단기 알바를 하며, 충실하게 본업도 지키고 있다. (홈프로텍터)


그날은 교육문화콘텐츠 회사에서 기획 2팀 팀장으로 함께 근무했던 형이 부탁해 함께 미용실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형은 회사에서 만능일꾼으로 통했다. 마치 공연이라는 큰 무대 뒤편 안 보이는 곳에서 무대를 세팅하거나 장비를 운영하는 그런 류의 일을 하는 팀장님이었다.


내가 회사를 입사하고 한동안 근무한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현장이었다.


"@@주임님~ 아직 자리랑 컴퓨터가 구비가 안 돼서 한동안은 2팀이랑 움직여주세요~"


대표의 짧은 카톡으로 나는 아파트 문화센터 공사현장에 출근해 오전 내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왜 교육문화콘텐츠 회사에서 인테리어 시공을 하는 거지?'

그때는 도시재생이라는 회사의 업에 대해 잘 모르던 때라 당연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재생.

우리나라는 빛나는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뒤에는 어두운 부분이 있다. 한때 물류와 인력이 모이던 각 도시들은 발전의 양극화로 사람들이 떠나면서 옛 위용을 잃고 덩그러니 8~90년대 모습을 유지한 채 방치되고 있다.


동네에 제대로 된 문화시설이 없어 직접 소극장을 만들고, 비어있는 건물의 주인들과 협의를 해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등 청년들과 지역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낙후된 도시를 다시 한번 문화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도시를 재생시키는 작업 그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대표가 나중에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회사는 인테리어 시공까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현장에는 나 이외 세명은 전부 2팀 소속으로 팀장과 대리, 주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업무는 인테리어 시공, 현장 공연장비운영, 무대설치 및 소품제작 등 한마디로 회사의 야전팀이다.


그중 팀장과 주임은 회사 입사 전부터 알던 사이로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둘은 콤비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테리어 시공을 하며 4일간 유심히 팀장과 주임의 모습을 관찰해 본 결과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야"(손을 내밀며)

"응"(드라이버를 가져다준다)


(쳐다보지 않고 주임에게 손을 내민다)

(손을 보더니 자재를 가져다준다)


놀랍게도 이것이 그들만의 작업방식이다. 말 그대로 이심전심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척척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어쩔 때는 하루 종일 '야' 한 글자로 업무가 처리되기도 했다.


가끔 신입답게 열심히 하려고 그들의 중간에서 일을 돕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소통의 부재로?! 눈치가 없는 무능력자가 되어버리곤 했다.


"괜찮아 @@주임, 그냥 거기서 장비 정리만 해줘"


처음에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걱정도 되고, '일을 못하는 건가' 낙담도 했지만 내가 돕지 않고 시킨 일만 하는 게 더 효율적인 업무 방식이란 걸 4일 만에 깨달았다.


그런 2팀의 팀장과 주임이 퇴사를 하고 함께 경력을 살려 가구제작과 인테리어 시공 사업을 시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근데 주임님은 이제 같이 안 하시는 거예요?"

팀장의 연락을 받고 더 묻지 않고 하겠다고 나왔지만, 내심 기대했다. 이전 직장에서 처럼 셋이서 오랜만에 현장일을 한다는 생각에..


하지만 도착한 현장에는 팀장만 있을 뿐 주임은 없었다. 그들이 함께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째 되었고, 여전히 같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주임은 동영상 편집 기술을 배운다며 떠나 현재는 형 혼자 일을 하는 상황에 내가 알바를 온 것이다.


"나도 모르겠다. 같이 열정 있게 했었는데 다른 길을 본 건지.." (웃음)


나 역시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역사가 좋아 4년제 사학과로 진학했지만 좋아서 자발적 공부하던 때와 학점을 위해 공부하던 때는 달랐다.


결국엔 빠른 취업을 위해 전문대 정보통신과로 졸업하고도 그 두 전공과는 상관이 없는 문화기획자를 꿈꾸며 교육문화콘텐츠 제작사의 기획자로 입사했다.


일련의 과정은 순전히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생각한 내 선택에 따라 진행됐지만, 결과는 늘 내가 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자신의 마음조차 헤아릴 수 없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그렇게 잘 맞는 이심전심 형과 동생도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게 된 것이다.


"잘해왔던 일들이 갑자기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새로 하려는 일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어. 대부분은 해왔던 일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보면 새로 하는 일에도 이전에 경험했던 게 큰 도움이 되더라고."


"그래도 주임님이 없으셔서 허전하시죠? 바늘 가는 데 실이 없으니"


"바늘은 가려는데 새로 들인 실이 지금 실없는 소리만 하고 일은 안 하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 않을 거라면 결국 남의 일이다. 그래서 형도 떠나는 주임을 굳이 애써 잡지 않을 이유일 것이다.


형에게 핀잔을 듣고 나도 잡생각을 버리고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타인의 의도를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저 사탕수수밭 노예처럼 계속해도 끝나지 않는 이 힘든 인테리어 시공 보조의 역할이 빨리 끝나기를..


넷.


"@@아!"

"네?"


(잠깐의 침묵)


"아이 왜 수평자 안 가져다줘!" (화가 났음)

"아니.. 말을 해주셔야 가져다 드리죠.."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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