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는 토론 전략
토론은 서로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공유하고, 나의 가치관과 의견에 대해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토론할 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자체이므로 내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누군가는 ‘꼰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라떼’라고도 한다.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이런 사람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토론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나의 의견을 들을 기본적인 자세조차 갖추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다른 선택지나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자신의 의견을 사실임을 강조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보기에서 선택해보자.
1번: 그 사람의 의견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으니 모든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2번: 어차피 말해도 듣지 않을 것 같으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3번: 상대방의 논리를 규명하는 질문을 한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1번 아니면 2번을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특히 서로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정치 사안을 둘러싼 대화나 토론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반론을 할 것이다. 그래야 후련하고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반론은 다시 재반론으로 이어지고 열띤 토론으로 이어지지만 결국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대개 서로의 감정이 상한 채로 토론을 마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된 사람들은 이제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토론을 해봤자 상대방이 나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상대방의 의견이 바뀌지 않을 건데 굳이 에너지 소모를 하면서까지 내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의 전환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으로 의견을 대한다. 정신건강 차원에서 이롭다고 볼 수 있지만, 조직과 사회의 차원에서 이 역시 딱히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대신 위 두 방법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생산적인 토론을 이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론하거나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부드럽게 상대방의 가정과 근거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대화 중에 “이 정권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라는 주장을 했다고 치자. 그러고 나서 특유의 ‘라떼는 말이야’ 기술을 시전한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바로 반론을 펼치기보다는 먼저 그 사람의 가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이 정권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고요?! 경제는 오히려 좋아지고 있어요. 그 이유로는 …….”라고 하는 대신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때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상대방은 뭘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거나,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적절하게 해주면 된다.
선생님의 주장이 어떻게 그 결과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선생님의 경험때문인가요, 아니면 다른 예시나 자료들이 더 있나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 단어(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과거랑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가요?
아마 이 과정에서 말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이를 정중하게 지적하고 추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분명 처음에는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그 문장을 제시하면서) 방금 말한 것과 그 부분이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답변 간의 모순을 지적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도 자신의 논리의 모순이나 부족함을 알게 될 것이다. 상대방은 열을 내며 말하면서도 최대한 내색을 안 하려 노력하겠지만. 그리고 설욕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어쩌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럼 당신이 제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 번 설명해보세요.
이때가 중요한데, 직접적으로 응대해 줄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의견에 반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응대를 해주면 오히려 상대방은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기 위해 나의 말꼬리를 잡아 논점을 흐리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일반 사람이 아닌 이미 나름의 ‘인생의 답’을 갖고,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대신 다음과 같이 응대하는 것이 좋다.
저는 반대를 옹호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처음부터 선생님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한 건 선생님이고 제가 그 논리에 설득되기 위해서는 보충할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질문을 드린 거예요.
(추가로) 그렇게 주장한 사람이 그 의견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 거니까요.
여기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화를 잘 이끌어왔다면,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이다.
잘 들었어요. 선생님의 의견이 증명되지 않은 가정들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아 이해를 잘 못 해서 질문했을 뿐이에요. 잘 설명해 주셨는데 경험과 관점의 차이가 있다 보니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이처럼 질문으로 대화를 끌어가는 것의 목적은 상대방의 의견에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서 나의 우위를 과시하는 게 아니다. 대신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여 우위를 점하는 건 중수의 토론 방법이다.
고수는 질문을 통해서 상대방을 부드럽게 굴복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