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승 Dec 26. 2022

같은 것을 들어도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

당신의 듣기 기본값은 무엇인가요?


#1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는 나래씨. 지난 몇 개월 간 매달려 온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하는 날이다. 처음으로 담당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해야 하는지라 가슴이 쿵쾅거리고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무언가 중요한 내용을 빼먹진 않았는지, 예상되는 질문을 다 검토했는지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표 전에 숙지해야 할 내용은 없는지 경험 많은 상사에게 조언을 구한다.

"오늘 부서 전체 회의에서 발표가 있는데 너무 부담되고 긴장돼요. 제가 더 알고 가면 좋을 게 있을까요?"

상사가 답한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래님은 준비도 많이 했고 이미 잘하고 있는 걸요. 저도 자신 있게 발표하는 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2 준비한 만큼 프레젠테이션을 잘 해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나래씨. 발표 후,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된 여러 후속 조치도 검토해야 하고, 다른 업무도 끝내야 한다. 지난 몇 개월 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이런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입사동기와 얘기를 하면 마음이 괜찮아질 것 같아서 약속을 잡았다. 요즘 일은 어떤지, 주말에는 뭐하는지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본심이 나와버렸다.


"일이 쉽지 않네... 나 정말 휴가가 필요해"

동기가 답한다.

"최근에 남해 풀빌라 리조트를 갔다 왔는데 너무 좋더라고. 꼭 한 번 가봐. 괜찮았던 곳, 맛집 정보 다 공유해 줄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만한 대화로 일견 아무 문제없어 보인다.

그런데 나래씨 입장에서 보면 위 대화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가 일어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마다 들을 때 취하는 기본값(default)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듣기의 기본값'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대화나 토의에서 큰 변화를 만든다. 개인마다 들을 때 취하는 기본값, 즉 듣기 방식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Bodie & Worthington, 2017)


1) 분석형: 문제를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듣는 유형

2) 관계형: 말하는 내용을 이루는 감정선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려고 듣는 유형

3) 비판형: 대화의 내용과 화자의 신뢰성을 평가하려는 유형

4) 업무중심형: 중요한 정보와 결론 위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유형 


모든 사람에게 위 네 가지 유형이 나타나지만 개인마다 두드러지는 유형 한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 듣기 기본값이다. 듣기 유형 중의 나는 어떤 유형에 가까운지 알아야 평소에 내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나와 똑같이 생각할 거야,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나는 사람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구나, 라거나 대화에서 관계 중심으로 듣는 내용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구나,라고 자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 네 가지 유형 중 상대방이 어떤 유형의 정보를 원하는지 생각해보면 좋다. 말의 내용과 맥락을 따져보면 단순히 격려의 말을 듣길 원할 수도 있고, 꼼꼼한 피드백을 원할 수도 있고, 결론만 듣길 원하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나래씨의 예시로 돌아가보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상사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온 건 격려의 말이다. 상사가 나래씨의 상황과 실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피드백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래씨의 의도(분석형)와는 달리 상사는 나래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격려의 말(관계형)로 응답하였다. 대화는 이뤄졌지만 결국 소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내용을 두고도 자신이 듣는 방식에 따라 의도를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동기와의 점심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한 업무에 지쳐 힘들다는 내색을 하고 싶어서 "휴가가 필요해"라는 말(관계형)로 대신하였다. 그런데 동기는 위로는커녕 자기가 최근에 다녀온 곳에 대해서만 얘기하니 오히려 힘이 빠진다. 동기는 <업무중심형>으로 들은 내용을 해석하고 반응한 것이다. 내 듣기 기본값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동기 입장에서는 나래씨가 휴가를 가고 싶다고 했고, 이걸 듣는 순간 휴가를 가는 데 필요한, 그리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정보들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대화는 이뤄졌지만 결국 소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상대방과 대화하거나 토의할 때 내가 어떤 듣기 방식을 취하는지만 알고 있어도 오가는 메시지를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다. 내게 전달되는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내 듣기 기본값을 모르면 내가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듣기 기본값만 취하지 말고 토의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게 이 네 가지 유형을 카멜레온처럼 오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와 상대의 발언을 관찰하며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듣기 모드를 바꿔야 한다.


듣는 행위에는 큰 힘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도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듣기는 불통으로 이어질 뿐이다. 더 세심한 듣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 참고자료: 

Bodie, G.D. and Worthington, D.L. (2017). Listening Styles Profile-Revised (LSP-R). In The Sourcebook of Listening Research (eds D.L. Worthington and G.D. Bodie). https://doi.org/10.1002/9781119102991.ch42 

작가의 이전글 회의(토론)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다가 아닌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