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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
예능보다 못한 토론

정책과 논쟁이 사라진 형식만 남은 토론회

by 이주승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여야는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섰다. 그중에서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 토론회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유권자의 기대를 크게 저버렸다. 정치적 지향을 떠나, 이번 토론회가 놓친 핵심은 분명하다. 토론은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책, 태도, 논리를 비교할 수 있는 ‘검증의 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는 발표 중심의 구성, 토론의 본질을 흐리는 형식, 질문의 품격 부족 등 여러 측면에서 그 본래의 목적과 멀어져 있었다.


자칫 지루하거나 늘어질 수 있는 토론회에 보다 많은 사람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도록 MBTI 자기소개 등 많은 것을 고민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운 마음은 있다. 하지만 후보자에게도, 유권자에게도 남는 게 없는 무의미한 연출이었다. 토론회 형식도, 토론자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적어도 토론배틀로 한정하면, 국민의힘 내부에는 더 나은 청년 토론자가 많아 보였는데, 정작 당의 얼굴인 대선 후보들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토론회의 문제를 짚기 전에 우선 1차 토론회 방식을 살펴보자.

국민의힘_토론회.png
국민의힘 1차 경선 토론회는 8명의 대선 경선 후보가 두 조(A조, B조)로 나뉘어 각 조별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실제 토론 현장으로 가보자. 후보들은 먼저 MBTI 자기소개를 한 뒤 '민생·경제·복지'와 '외교·안보' 등 공통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조별로 배정된 추가 주제(예: A조 청년미래, B조 사회통합)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심사 방식은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적용한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한 100% 국민 여론조사로 진행되었고, 8명 중 4명을 2차 경선 진출 후보로 뽑게 되는 방식이다.


토론이 아니라 발표회

1차 토론회는 조별로 나뉜 후보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공통 주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발표가 끝난 뒤엔 ‘소감 나누기’ 수준의 간단한 반응만 오갔고, 그마저도 교차 질문이나 논리 검증은 없었다. 이는 토론이 아니라 일방향적인 발표다.

이어서 진행된 조별 주제토론도 마찬가지였다. 각 후보는 4분씩 발언 기회를 가졌고, 원하면 상대에게 질문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인 구조에서는 논점이 분산되기 쉽고, 질문 대상이 명확하지 않으며 논의가 중첩되거나 단절되기 쉽다. 비슷한 구성인 대선후보 토론을 떠올려보면 된다.

결국 의제별 깊이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발표만 반복되는 구조였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사회자가 빈틈없이 토론을 진행하려고 해도 잘 될까 말까 한 게 1:1:1:1 토론이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를 보면 후보자당 수많은 키워드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여 토론의 쟁점이 형성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토론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대결이 아니다. 정책을 두고 후보자 간 논리를 충돌시켜, 유권자가 각자의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질문과 반박, 재반박의 과정 없이 어떻게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후보자의 태도를 검증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토론.png 출처: 유튜브 MBCNEWS (https://www.youtube.com/watch?v=w-laBH51GlI)


본질보다 흥미를 택한 기획

MBTI 자기소개, 밸런스 게임 등은 젊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정책 논의의 시간을 대체했다는 점이다. 후보자의 비전과 공약을 심도 있게 토론할 기회가 없었다면, 아무리 흥미로운 요소를 추가해도 토론회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일부 후보는 “재미를 위한 억지 질문”이라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고, 실제로 해당 코너의 기획 의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고 한다. 적어도 토론회에서는 유권자는 정보를 원하지, 예능을 기대하지 않는다.

정치 토론의 핵심은 단순한 말의 교환이 아니라, 후보자의 정책과 논리를 유권자 앞에서 검증하는 데 있다. 이는 유권자가 각 후보의 현실 인식, 문제 해결 방식, 위기 대응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공적 인터뷰’다. 압박 상황 속 반응, 반대 의견에 대한 논리적 대응, 논점 간 충돌에서 드러나는 정책의 허점과 강점은 일방적 발표로는 확인할 수 없다. 질문–반박–재반박이라는 토론의 기본 구조가 작동할 때, 비로소 후보의 진짜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국민의힘 토론회는 후보의 역량을 검증하고 정책을 비교할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아니라 가십거리와 유튜브 클립을 만들어내는 장으로 전락했다.


질문이 토론의 품격을 결정한다

이번 토론회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지점은 ‘질문’이었다.


“왜 키 높이 구두를 신느냐”

“생머리냐, 보정속옷이냐. 이건 내가 유치해서 안 묻겠다”


B조 조별 주제 토론에서 홍준표 후보가 청년 플랫폼에 올라온 질문이라며 한동훈 후보에게 한 질문이다. 술자리도 아니고(심지어 술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는 공적 토론에서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질문으로, 정치 담론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당 질문을 던진 후보 측은 ‘검증 차원’이라는 논리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 질문의 목적이 실제 정책 역량 검증에 있는가? 추후 언론 보도와 유튜브 인터뷰 등을 보면 당사자는 이러한 질문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 토론에서도 그런다”, “일부 언론은 품격 운운하기도 하는데 그 언론은 품격이 있었나”, “한 후보가 이미지 정치를 하니 검증 차원에서 타당한 질문이다”와 같은 답변으로 정리된다. 이 짧은 문장들에도 수많은 논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해당 후보자가 기본적인 논리적 사고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를 조롱하고 토론의 본질을 흐리는 발언은 ‘유권자에 대한 예의’라는 관점에서도 낙제점이다. 공적 토론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조차 넘나드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수준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토론은 유권자의 권리다

정치 토론은 유권자가 후보자의 정책, 태도, 위기 대응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이다. 이번 토론회처럼 교차 검증이 부재한 구조에서는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 사라진다. 토론이 유튜브 클립과 밈(meme)으로만 소비된다면, 정책은 소음 속에 묻히고 만다.

토론은 발표 공모전이 아니다.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회는 정책과 논제 중심으로 설계돼야 하며, 예능적 기획은 보완 요소일 뿐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




수백 건의 토론대회와 토론회를 설계하고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명확하다. 성공적인 토론회는 토론의 원칙과 목적을 이해하고 논제 설계에 집중하는 조직에서 나온다. 반면 토론을 도구로 사용하는 이유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하라니까 하는’ 조직이 하는 토론회는 결국 실패한다. 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질문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토론의 깊이와 품격은 달라진다.


국민의힘은 ‘나는 국대다’ 토론배틀처럼 과거 잘 설계된 토론회를 보여준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번 퇴보는 더욱 아쉽다. 누구나 아는 ‘100분 토론’,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토요토론’ 등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충분히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의 기획이 더 아쉽다.


다음 토론회에서는 꼭 보여줘야 한다. ‘구두 높이’가 아니라 ‘정책의 높이’로 경쟁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그것이 정당의 품격이고, 유권자에 대한 기본 책임이며, 결국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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