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와 남편과 아기 이레, 우리 세 식구는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몸도 지치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나는 큰 병은 아니었지만 몸에 생긴 염증 때문에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내음이 살짝 감도는 3월의 첫 번째 토요일, 우리는 기분 좋게 외출을 했다.
얼마 전 처음 방문했을 때 음식과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베트남 음식점을 다시 찾았다. 남편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분짜를, 나는 기본 쌀국수를 주문했다. 후식으로 베트남 아이스커피도 추가해, 조금 더 여유로운 주말 분위기를 내보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한 곳에서 얌전히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우리 아기 이레 덕분에 식사는 40분을 넘기지 못했다. 아직 컵에 꽤 남아 있던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옮겨 담고, 우리는 근처 몰에 들르기로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나이가 많지도 젊지도 않은 한 백인 여성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어깨 보다 조금 긴 정돈되지 않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고, 다소 초라한 행색이었다.
“Hi. You guys are so beautiful!”
(당신들 모습이 참 보기 좋군요!)
낯선 목소리에 조금 놀란 마음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Thank you”(고마워요)라고 답했다.
“You guys are a beautiful couple. And you have a beautiful baby, too.”
(당신들은 아름다운 부부군요. 그리고 예쁜 아기도 있군요.)
“You are beautiful, too.”
(당신도 아름다우세요.)
미국에서의 스몰토크에서 흔히 하듯 인사치레로 답했지만 나의 진심이기도 했다.
“Thank you. You are so sweet. I love you. God bless you.”
(고마워요. 정말 친절하시네요. 사랑해요. 하나님이 축복하시길 바라요.)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대화를 끝냈을 텐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God bless you, too. Are you Christian?”
(하나님이 당신도 축복하시길 바라요. 혹시 크리스천이신가요?)
“Yes, I believe in God. But I drink alcohol and I take pills. But God will forgive me.”
(네, 저는 하나님을 믿어요. 하지만 술도 마시고 약도 해요.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용서해 주실 거예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Yes, He will. I will pray for you.”
(네, 그분은 용서해 주실 거예요. 제가 기도할게요.)
“Oh, I love you. But I am always alone.”
(아, 사랑해요. 하지만 저는 늘 혼자예요.)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이 사람은 왜 낯선 이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걸까? 마음이 아팠다.
“I believe God is with you.”
(저는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신다고 믿어요.)
“Thank you so much. Have a beautiful day.”
(정말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짧은 대화를 나눈 후, 그녀는 우리를 몇 걸음 앞질러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늘 혼자예요”라는 그녀의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아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왜 내가 다니는 교회를 소개해 주거나 성경 한 구절도 전해주지 못했을까?’
뒤늦은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남편과 나는 대형 식료품 마트로 향하며 솔직한 마음을 나눴다.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혹시 돈을 요구할까 봐 경계했던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반성했다.
그러던 중, 마트 입구가 가까워졌을 때 한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칠까 망설였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용기가 나를 움직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환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Hey!” (저기요!)
하지만 불과 몇 분 전 만났음에도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오히려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왜 말을 거는지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조심스럽게 우리 교회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알려주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Are you Jehovah’s Witness?”
(혹시 여호와의 증인이신가요?)
기독교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여기며, 그들은 활발한 노방 전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혹시 내가 그 단체의 일원일까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처음에 알아듣지 못해 두 번이나 다시 물은 후에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정신이 온전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I’m just a Christian.”
(저는 그냥 크리스천이에요.)
그제야 그녀는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보통의 크리스천들과 소통하고 싶다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라도 성경 말씀 한 구절이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수잔이라고 했고, 내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을 알려주자 그녀는 “아름다운 이름이네요”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긴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남편은 아기가 탄 유모차를 밀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심성이 많아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가 궁금했는지 내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넌지시 물었다. 나는 마트로 들어가며 남편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마트 입구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심하며 꽃을 고르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꽃 있나요?”
남편의 물음에 나는 자연스럽게 해바라기로 시선이 갔다. 노란 해바라기 다섯 송이가 담긴 작은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장을 보며 오렌지, 사과, 블루베리 같은 과일과 샐러드 등을 카트에 담았다. 우리가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간고사 기간으로 바쁜 교회 학생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학생들이 머무는 기숙사에 들러 과일을 건네주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유학 생활을 하는 이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과하게 고마움을 표현하곤 한다. 그들의 환한 미소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부모님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조잘대곤 했는데…’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보면, 이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멋진 청년들. 하지만 누구나 때때로 기댈 곳이 필요하듯, 나도 그들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늘 고민한다.
"나는 크리스천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육아로 몸은 바쁘지만, 머리와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날 밤, 나는 수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God is with you, and He loves you.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시며,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You are in my prayers, sister.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자매님.)
너무 길게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짧게 적었다. 그녀는 바로 답장을 보내며 고맙다고 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왜 오늘 그녀를 만났을까?’
하나님은 잃어버린 그녀를 찾아내셨다.
그런데 먼저 다가온 것은 그녀였다.
어쩌면 오늘,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나 또한 찾아내신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이들을 찾는 그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해 본다.
나를 부드럽게 괴롭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발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