쒸엔과의 인연

by 데비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나의 신앙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복이 있는 듯하다.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마주할 때가 많다.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는 한편, 어떤 때는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타인을 차단한 채 비관적인 마음 상태로 자신을 내버려 두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참 감사하게도, 나의 안부를 물으며 관심을 가져주는 교회 성도분들의 따뜻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보살피고 계심을 느끼곤 한다. 또한, 의무감에서라도 타인에게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자 할 때, 오히려 나의 마음이 기쁨과 풍요로 채워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홀로 조용히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느끼기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됨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교회 형제자매들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타인들에게도 다가가, 그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삶을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전도가 꼭 필요하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도 교회 성도분들과 함께 종종 거리나 대학 캠퍼스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은 한 공대 캠퍼스에서 교회 학생들과 소그룹 모임을 하기 전, 잠시 흩어져 전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카페테리아에서 혼자 앉아 있는 한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는 중국에서 온 물리학 박사과정 유학생, '쒸엔'이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안경을 썼으며, 약간 덥수룩한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성경 공부 소그룹 초청에 그는 약간 떨떠름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응했다.


그날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대해 토론했다. 물리학도인 그는 마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는 듯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한 번 초청에 응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매주 우리의 소그룹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성경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는 듯했지만, 우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는 점점 더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나 역시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며, 두 달 가까이 그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던 중 문득 그가 떠올랐다. 남편에게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남편도 좋은 생각이라며 바로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쒸엔은 흔쾌히 오겠다고 답했다.


쒸엔과의 첫 저녁 식사


그를 초대한 날, 나는 요리를 하고 남편은 청소를 하며 정성껏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쒸엔은 중국 스낵을 사 들고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는 우리가 차려놓은 저녁상을 보고 꽤 놀란 듯했다. 아마도 우리가 왜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의아했던 것 같다. 식사하며 그는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현재 지도 교수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 연구실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힘든 마음에 공감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면서 그는 "고마워요. 아주 기분 좋은 저녁 식사였어요."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우리를 자신의 작은 기숙사로 초대해 닭 요리를 해주었다. 남학생의 정돈되지 않은 기숙사라 조금 당황했지만, 그가 우리를 상당히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음식은 양념된 닭고기 요리와 밥뿐이었고, 좁은 공간에서 옹기종기 앉아 식사해야 했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 따뜻했다.


우리는 그렇게 종종 안부를 주고받으며 만났다.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는 그녀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고, 둘은 우리를 중국 음식점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해 주기도 했다. 또한, 여자친구와의 갈등에 대해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하며, 쒸엔은 우리 부부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로 인해 쒸엔과의 연락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덧 1년 가까이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정리하다가 문득 그가 떠올랐다. 설을 막 지난 때라, 그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며 안부를 물었다. 그는 장문의 답장을 보내며 우리 가족의 소식을 궁금해했다. 우리는 그를 다시 집으로 초대했고, 무려 1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 저녁, 그는 중국 과자와 함께, 부적처럼 생긴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가져왔다. 심지어 그것이 구겨질까 봐 자전거 대신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우리에게 줄 선물을 소중히 가져온 그의 마음씀씀이가 큰 감동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중국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문에 붙이는 ‘복(福)’ 자였다. 나는 그것이 부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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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319_140103162.jpg 쒸엔의 마음이 느껴지는 새해 선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그의 고민과 우리의 경험을 나누었다. 나는 그가 떠나기 전 그에게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삶의 여러 문제로 걱정이 많은 그에게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을 나눠주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는 나의 말을 잠잠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예수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우리 부부가 그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그의 과찬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이 다른이 에게는 크고 작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여전히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우리 부부와의 우정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말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를 위해 조용히 기도해 주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를 보낼 시간이 되자, 남편은 그를 차로 바래다주기 위해 그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나는 졸려 보채는 아기와 설거지가 쌓인 부엌에 남겨졌다. 하지만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생기로 가득했다. 문득 예수님이 생각났다. 늘 나 같은 죄인들과 함께 떡을 떼시며 식사하신 예수님.


나는 요즘, 우리 집으로 이웃을 초청해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고 있다. 비록 출산 전처럼 예쁘게 플레이팅 해 내놓지는 못하지만, 풍성한 식탁에서 함께 나누는 기쁨은 여전히 크다.


우리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 우리의 거처에서,

우리의 주린 배를 채우는 풍성한 식탁에서,

우리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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