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이곳을 떠나, 어디론가 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
엄마오리가 할아버지오리와 형제들에게까지 구박을 받는 막내 아기오리를 보며 속상한 나머지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진심은 아니었어요. 누가 뭐래도 엄마오리 눈에는 귀엽기만 한 분명한 자기 새끼였으니까요. 태어나기 전부터 칠면조 알이니 버리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막내를 지켜왔는데, 튼튼하게 자랄 때까지 꼭 보호해주겠다는 각오를 하며 엄마오리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기오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엄마오리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설마 내가 한 말을 들었나? 아니면……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엄마오리는 나머지 새끼들을 할아버지 오리에게 맡겨두고 허겁지겁 막내 아기오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다행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홀로 앉아있는 아기오리를 발견했어요. 아기오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혼자 있으니 일반적인 오리와 다르게 생긴 것이 그렇게 눈에 띄지도 않았어요.
엄마오리는 막내를 당장이라도 집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형제들이 쪼아대서 생긴 상처들을 보니 어린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으면 이런 결정을 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래, 막내는 자신을 괴롭히는 오리 무리로부터 떨어져 지내는 편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어.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야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할 수 있으니 아는 채는 하지 말아야겠다.’
그날부터 엄마오리는 매일 밤 잠든 아기오리를 찾아가 몰래 머리맡에 먹이를 두고 갔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맛있는 것이 생기면 숨겨놓았다가 다른 형제들보다 넉넉히 챙겨주었어요. 아기오리가 물오리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다친 날, 엄마오리는 눈물을 훔치며 밤새 상처를 치료해주었습니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엄마오리는 혼자 지내는 막내 생각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나머지 새끼들과는 겨울을 보낼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았는데, 막내 아기오리는 얼어 죽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죠. 근처에 다행히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살고 있어서 미리 부탁을 해놓기로 했습니다.
“혹시 하얗고 덩치가 큰 아기오리가 찾아오거든 겨울 동안 함께 지내게 해 주시겠어요? 제 새끼인데 사정이 있어서요……”
“그럼! 우리 집에 살고 있는 닭과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 되겠어. 아주 순한 놈들이야.”
엄마오리는 막내가 할머니 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생각과 달리 닭과 고양이는 전혀 순하지 않았어요. 아기오리는 그들의 구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엄마오리는 아기오리의 행방을 찾아 헤맸지만 눈이 펑펑 내리고 호수가 얼어붙은 강추위 속에 아기오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막내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엄마오리는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오리들을 통해 호숫가의 바위틈에 하얗고 덩치가 큰 못생긴 아기오리를 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엄마오리는 추위를 뚫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자신의 새끼임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디서 무슨 고생을 하고 왔는지 아기오리는 한껏 야윈 모습이었어요.
그 후 엄마오리는 겨울바람으로부터 아기오리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밤 찾아가 밤새 따뜻하게 품어주었고, 아침이 밝기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오리의 체온 덕에 아기오리는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덧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위가 가시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얼음이 녹은 호수에 비친 아기오리의 모습은 아름다운 백조였어요. 움츠렸던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백조 무리에 합류하게 된 모습을 지켜보며, 안 보이는 곳에서 그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엄마오리였습니다.
‘그래, 이제 모두에게 예쁨 받으며 살아! 누가 뭐래도 넌 나의 사랑하는 아기오리란다.’
백조가 된 아기오리는 알까요? 모두에게 괴롭힘을 받으며 미운 아기오리로 불리던 시절에도, 사실은 늘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요.